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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Art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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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i Frid

A 조회 수 2309 추천 수 0 2005.09.21 15:43:00


프리다(Anni-Frid Synni Lyngstad)라고 흔히 잘 알려진 그녀는 1945년 11월 15일 노르웨이의 나르빅 근교에 있는 Ballangen에서 태어났다. 다른 ABBA의 맴버들과 대조적으로, 프리다의 유년시절은 너무나도 드라마틱 했었다.

프리다의 아버지는 독일군이었다.(참고로 독일은 2차대전 초기에 철광석의 안전한 수송과 영국의 견제할 전략적인 이유로 노르웨이를 무단 점령하고 종전때까지 점령통치 하였다) 반면에 프리다의 어머니인 Synni는 노르웨이의 10대 소녀였었다, 그들의 은밀한 관계는 독일의 강제점령하의 노르웨이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일이었다.프리다의 아버지인 알프레드 하세는 프리다가 태어나기 전에 노르웨이를 떠났다. 그리고 그가 타고 독일로 돌아가던 그배가 격침당했을때 그도 실종된 것으로 믿어졌다

프리다의 아버지로 인한 논란으로 인해서 그녀는 사생아로 태어날 수 밖에 없었고, 그녀의 할머니는 어린 프리다를 데리고 스웨덴으로 이주할 것을 결심하였다. 어린 프리다와 그녀의 할머니는 Torshalla을 떠나 스웨덴의 Eskilstuna로 이주하였다. 프리다의 어머니인 Synni도 곧 그들과 합류하였으나, 슬프게도 그녀는 프리다가 태어난지 채 2년도 되지 못하여 사망하고 말았다.

어린 프리다는 음악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의 나이 11살때 적십자 주최 자선행사에서 첫번째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2년후 댄스악단인 Ewald Eks kvintett에서 나이 어린 보컬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1961년 10월, Bengt Sandlund의 대형악단으로 전속한 프리다는 그곳에서 그녀의 첫번째 남편인 Ragnar Fredriksson을 만날 수 있었다. 프리다는 그와의 사이에서 두아이(Hans 1963년생, Lise-Lotte 1967년생)을 얻었다. 1964년 프리다와 남편 Ragnar는 Bengt Sandlund의 악단을 떠나 그들만의 밴드인 Anni-Frid Four를 결성 하였다.

밴드결성과 별도로, 프리다는 몇군데의 예능 컨테스트에 응모하였는데 1967년 9월 3일 스톡홀름 Skansen에서 열린 한대회에서 En ledig dag(Weekend In Portofino의 스웨덴어 개사곡)을 불러서 우승하게 된다. 컨테스트 우승직후 프리다는 스웨덴 국영방송에 출연하여 그녀의 우승곡을 부르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방송출연후 곧바로 프리다는 EMI레코드와 계약을 하게 되었고 최초의 싱글(En ledig dag)을 출시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초기 싱글들은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하였다. 그대신 Du ar sa underbart rar (the Frankie Valli의 히트곡 Can't Take My Eyes Off You의 스웨덴어 개사곡)는 큰인기를 얻게 된다.

프리다는 일반 공연무대에서 인기있는 여자가수였지만, 1968년 여름, Lasse Lonndahl같은 스웨덴 인기 아티스트들과 함께 Folkparks 순회공연을 가지기도 하였다. 1969년에 프리다는 재즈 피아니스트인 Charlie Norman과 함께 18개월간의 공동공연을 시작하였다. 이 두커플은 1969년부터 1970년까지 함께 무대공연과 Folkparks 순회공연을 가졌었다.

그러는동안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싱글을 발표했었다.
1969년 3월 Melodifestivalen (유러비젼 송 컨테스트 스웨덴 예선)에 Harlig ar var jord라는 곡으로 참가를 하였다. 이곡은 그녀의 첫번째 인기챠트 진입곡이 되기도 하는데 인기투표 방식의 라디오 순위챠트인 Svensktoppen에서 단 1주 챠트에 머물렀었다.

베니 역시 Lars Berghagen과 함께 공동제작한 Hej clown으로 Melodifestivalen에 참가를 하였다. 같은 대회에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리다는 베니를 만나지 못했는데 며칠후 스웨덴 남부 Malmo에서 함께 출연을 하다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바로 연인사이가 되었고, 베니는 프리다의 음반 제작에 착수한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로 1969년 9월 베니와 비요른이 작사/작곡한 Peter Pan이 녹음된다 (이것은 미래의 ABBA맴버가 되는 세사람이 함께 공동작업한 가장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된다) Peter Pan이 싱글 A면으로 출시되었을때 큰반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그속에는 훗날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ABBA 특유의 마력이 담겨져 있어 상당히 매력적인 노래이기도 하였다.
1970년 5월, 프리다는 Svensktoppen 챠트에 두번째로 모습을 나타내는데 the Edison Lighthouse의 영국챠트 1위곡인 Love Grows (Where My Rosemary Goes)의 스웨덴어 개사곡 Dar du gar lamnar karleken spar로 8위에 2주간 랭크된다..

프리다는 좀처럼 빅히트곡을 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8번째 싱글발표후, EMI는 프리다의 데뷰 앨범을 내볼만 하다고 생각하고 제작하기로 결정을 한다. 베니가 프로듀스와 세션을 맡아서 1970년 9월에 녹음에 들어간 이 앨범은 1971년 봄에 출시되었다. 앨범발매와 동시에 발표된 En liten sang om karlek (Five Pennies Saints의 번안곡)는 인기를 얻을 수가 없었다.

데뷰앨범을 제작할 당시 프리다와 베니는 또다른 약혼커플인 비요른, 아그니타 커플과 함께 팀을 이루어서 1970년 11월 1일 고텐부르크에 있던 Festfolket 캬바레 무대에서 공연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할수도 없는 일종의 모험이었지만, 그들은 1971년 2월까지 네명이 팀을 이루어서 계속 순회공연을 가지게 된다.

1971년 여름, Lars Berghagen과 함께 Folkparks 순회공연을 가지게 되고, 가을에는 처음으로 Svensktoppen에서 Min egen stad(1967년 헵스타즈 시절 베니가 작곡했던 It's Nice To Be Back의 번안곡)로 1위를 차지하게 된다.

1971년 10월, 프리다는 버라이어티 쇼인 Mina favoriter의 무대에 서게 되는데 1972년 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게 된다. 1972년 1월, 프리다는 EMI에서의 마지막 싱글인 Vi ar alla bara barn i borjan, 녹음하게 되고, 그 뒤를 이어 나온 그녀의 다음싱글은 폴라뮤직의 라벨을 달고 나온 Man vill ju leva lite dessemellan였데 이곡은 1972년 가을 Svensktoppen에서 챠트정상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챠트에서 10주동안이나 머무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이전에 ABBA의 첫번째 싱글인 'People Need Love'가 녹음/발매가 된다. 1974년과 1975년에 걸쳐 ABBA의 열풍이 전세계에 휘몰아 칠때 프리다는 그녀의 마지막 스웨덴어 앨범 제작에 들어가게 된는데, 베니가 프로듀서를 맡은 Frida ensam은 1975년 11월에 발매된다.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음반이 되는데 13만장의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

1977년, 독일의 팝매거진인 'Bravo'에서 ABBA의 특집으로 각 맴버들의 자세한 전기를 소개하게 되는데, 이때 Andrea Buchinger는 자신의 이목을 끄는 기사를 발견하게 된다.

Andrea Buchinger는 그녀의 삼촌이 프리다의 실종된 아버지의 이름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녀의 사촌인 페터에게 그의 아버지가 1945년 노르웨이에서 복무할 당시에 Synni Lyngstad라는 이름의 여성을 알고 있었는가를 물어보게 하였다. 페터의 아버지가 그사실에 대해서 인정을 하자, 페터는 프리다의 대형사진을 그의 앞에 들고 가서 "여기에 있는 이 사람은 당신의 딸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리하여, 알프레드 하제는 그의 알려지지 않은 딸을 만나기 위해서 스톡홀름으로향했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울기 시작했습니다." 프리다는 당시의 만남을 회상하며 "그러나, 32살에 아버지를 얻게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죠, 만약 아버지의 주위에서 자라 왔더라면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정말로 멋있고, 근사한 분이셨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1981년 11월, ABBA의 마지막 앨범인 The Visitors가 발매 되었으며, 1982년 가을까지 레코딩 작업은 계속되었지만 그룹의 맴버들 사이의 유대감은 이전과 같이 가깝지 못했다. 아그니타와 비요른은 1979년에 이혼하였고, 베니와 프리다는 1978년 10월에 결혼을 했지만, 곧이어 1981년초 이혼하게 된다.

그리하여, 1982년 2월 프리다는 필 콜린스가 프로듀스를 맡은 그녀의 최초 영어 솔로앨범인 Something's Going On의 녹음을 시작하게 된다. 사실, 프리다는 1981년 "이혼음반"이라 불리며 발표했던 Face Value를 제작하면서 콜린스와 작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Something's Going On 앨범에서 컷오프 된 싱글들은 I Know There's Something Going On를 선두로 To Turn The Stone, Here We'll Stay 그리고 I See Red가 있었다. 세계적으로 이 앨범의 판매고는 100만장에 육박하게 된다.

1983년 프리다는 뮤지컬 Abbacadabra 프로젝트(기존 ABBA 곡들을 새로운 가사로 개사한 환타지 뮤지컬)에 참여하게 되며, ABBA의 Arrival에 불어와 영어로 가사를 붙여 각각 'Belle"(Daniel Balavoine와 듀엣)와 'Time'(B.A. Robertson와 듀엣)이란 이름으로 녹음하게 된다.

1984년 여름, 프리다는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가서 그녀의 다음 솔로앨범 녹음을 준비하게 된다. 이 앨범의 프로듀스는 Steve Lillywhite가 맡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나온 앨범이 'Shine'이다. 여기서 싱글로 발매된 곡들은 타이틀 곡인 Come To Me (I Am Woman), Heart Of The Country 그리고 Twist In The Dark 였다. Shine앨범은 상업적으로 그다지 큰 성공은 거둘 수가 없었다. 이즈음 프리다는 대중의 관심에 대해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Shine 이후 12년간 프리다는 음악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1987년에 프리다는 스웨덴 그룹 Ratata의 히트싱글 Sa lange vi har varann (영어가사로 As Long As I Have You란 이름으로 재녹음)에 게스트로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같은해 베니의 솔로앨범 Klinga mina klockor ("Ring, My Bells")에서 여성 올스타들이 함께 부른 타이틀 곡에 프리다가 참여한 것을 제외하면, 이후 5년간 그녀가 참여한 레코딩중 어느 하나도 돋보이지 못했다.

다음해에 이르러, 프리다는 그녀의 대외적 활동을 환경보호운동에 쏟아붓기 시작하였다. 특히, 스웨덴 환경보호단체인 Det naturliga steget ("The Natural Step")와 산하단체인 Artister for miljo ("Artists For The Environment")에 가입하여 열성적인 활동을 보여줬다.

1992년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온 프리다는 스웨덴 작곡가 Evert Taube의 고전 Anglamark ("Angels' Earth")를 녹음하게된다. 같은 싱글의 B면에는 Julian Lennon의 Saltwater를 솔로곡으로 녹음하게 된다.

프리다는 스웨덴 국왕부처의 개인적인 친구이기도 한데, 1993년 12월, 실비아 왕비의 50주년 생일 축하행사를 위해 조직된 팀의 맴버가 되었다. 축하행사장에서 프리다는 ABBA의 Dancing Queen을 스웨덴 보컬그룹인 The Real Group과 함께 불렀다. 이 곡은 1994년 Real Group의 음반에 실려 출시되게 된다.

2년후, 프리다는 마침내 정식으로 다시 음악활동을 시작하리는 결정을 하게 된다. 이 결과로 1996년 9월 스웨덴어로 부른 Djupa andetag ("Deep Breaths")를 싱글로 발표하게 된다. 이곡은 스웨덴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어 스웨덴 팝챠트 2위까지 오르게 되면서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 이 싱글에는 ("A Flower Also"), Ogonen ("The Eyes")와 스웨덴 출신 인기그룹 Roxette의 여성보컬 Marie Fredriksson과 함께 듀엣으로 부른 Alla mina basta ar ("All My Best Years")가 포함되어 있다.

1999년에 이르러 프리다가 새로운 영어앨범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현재까지 여러명의 프로듀서와 몇가지 시험제작을 했지만, 완료된 것은 거의 없었다. 분명한 것은 프리다가 세계무대에 복귀를 위해 준비하고 있으며, ABBA팬들은 그녀의 복귀를 환영할 것임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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