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혁명 이후 수많은 쿠바의 음악인들이 미국으로 망명해서 활동했지만 왜 '부에나 비스타 관련 인물들'만 뒤늦게 뜨거운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일까.
한국 팬의 경우 '오래된 신파가락'이라도 이미자와 심수봉의 트로트는 천박하다고 멸시하고 북한의 "반갑습니다"와 "휘파람"은 '순박한 맛이 있네'라고 느끼는 취향의 변덕과는 아무 관련 없는 것일까.
그 변덕이 또 한번 조화를 부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면,
오랫동안 꿋꿋이 연주해 왔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관련 음악인들에게 또 한번 무례를 저지르는 것일텐데.
1960년대 초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를 맞이하여 미국과 쿠바 사이에 일촉즉발의 상황이 초래되었을 때 언니인 하이디(Haydee)와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마이애미의 호텔에서
'아이다 4중창단(Cuarteto Las L'Aida)'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노래부르던 두 자매 중 오마라는
쿠바로 급거 귀국했던 반면 언니는 마이애미에 남기로 결심했던 일이다. 쿠바판 '이산가족'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