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기예르모 빌라르는 누에바 트로바에는 새로운 어법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사랑노래가 많았던 전통 트로바에 비해 보다 현실적인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가 필요해진 건 1959년 쿠바혁명이 일어난 직후였다.
당시 향락의 도시였던 아바나에서 유행하던 댄스뮤직으로 혁명의 의의를 전달하기란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카스트로의 측근이었던 카를로스 푸에블라는 20세기 초부터 '관타나메라'같은 세계적인 히트곡으로 인기가 있었던 전통 트로바에서 그 돌파구를 찾았다.
스페인의 기타음악과 샹송, 그리고
트로바도르(Trovador:유럽의 음유시인)
스타일이 혼합된 전통트로바를 바탕으로 조국사랑.자유.이상실현.평등의 메시지를 담은 누에바 트로바를 선보인 것이다. 어쿠스틱기타 반주에 맞춰 잔잔하게 노래하는 이 음악은 댄스뮤직으로 흥청거리던 쿠바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후 누에바 트로바는
실비오 로드리게스(Silvio Rodriguez)와
파블로 밀라네스(Pablo Milanes)같은 걸출한 아티스트를 배출하면서 쿠바음악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길에서 만난 40대 후반의 아바나 시민은 "몇 년 전부터 누에바 트로바의 인기가 시들해졌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이 고된 현실을 잊고자 댄스뮤직을 많이 듣는다"는 것이다.
누에바 트로바는 쿠바의 힘겨운 경제상황과 발걸음을 함께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