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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 Berger(미셀 베흐제)

M 조회 수 1391 추천 수 0 2005.09.21 17:01:45


2002년은 미셀 베흐제(Michel Berger)가 사망한지 10주기가 되는 해였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그를 추모하기 위한 일련의 움직임들이 있었다. 두 장짜리 그의 베스트 앨범이 발매됨과 동시에 여러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다시 불러서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고,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스타 아카데미’라는 프로에서는 가수 지망생들이 그의 노래를 다시 부르며 미셀 베흐제의 음악 세계를 새로이 소개했다.

미셀 베흐제는 의사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의사인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가정을 버렸고, 어린 베흐제는 우울했던 시간들을 피아노를치며, 노래를 만들면서 보냈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기도 전인 17세에 첫 싱글을 발표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면서, 꾸준히 음악 활동을 병행했는데,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세상에 각인시킨 기회가 되었던 것은 어린 시절의 친구였던 베로니크 샹송(Veronique Sanson)과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베르제는 샹송에게 노래를 만들어 주었고, 또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고, 베로니크 샹송은 베르제가 발굴한 첫 번째 스타가 되었다. 5년여를 함께 작업했던 그들은 샹송이 다른 음악가들과 음악을 시작하므로써 자연스럽게 둘 사이의 관계는 끝이 났다.
샹송과 결별한 같은 해에 베흐제의 천재성을 알아 본 프랑스와즈 아르디(Francose Hardy)는 그와 함께 작업을 하자고 요청했다. 이미 가수로써 어느 정도 명성을 갖고 있던 아르디는 베흐제와 작업한 ‘Message Personnel’이라는 앨범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자신의 자리를 더욱 굳건하게 할 수 있었다.
두 명의 걸출한 여가수를 만들어낸 베흐제는 74년 그의 인생의 동반자가 된 프랑스 걀(France Gall)을 만나게 된다. 첫 눈에 사랑에 빠진 베흐제는 프랑스 걀을 위해서 ‘Declaration’ 이라는 노래를 만들어주고, 어린 나이로 세간의 관심을 끌다가 나락의 길을 걷던 프랑스 걀은 베흐제를 만남으로써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그 둘은 76년 여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함께 음악 세계를 공유하게 된다.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터는 가정을 돌봐야한다는 생각에서, 둘이서 번갈아가면서 앨범을 계속해서 발표하고, 그 앨범들은 꾸준한 사랑을 받는다.
미셀 베흐제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최고의 사건은 78년에 일어난다. 미국에서 ‘Hair’라는 뮤지컬을 보고 감동을 받았던 베흐제는 그당시까지만해도 프랑스에는 전무했던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개척자가 된다. 그는 케나다 최고의 작사가인 뤽 프라몽동(Luc Plamondon)과 함께 손을 잡고 프팡스 최고의 뮤지컬이 된 ‘Starmania’라는 뮤지컬을 탄생시킨다. 공연에 앞서 발매된 앨범은 프랑스와 케나다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79년 파리의 Palais des Congres에서 3주간 공연한 이 뮤지컬의 성공은 몬트리올에서는 8만여명의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하기에 이른다. ‘Starmania’는 이후 독일, 스페인, 영국, 헝가리, 체코, 미국, 일본 등지에서 상연되었고, 특히 ‘Tycoon’이라는 이름으로 상연한 미국판에서는 신디 로퍼, 톰 존슨, 셀린 디옹 같은 걸출한 스타들이 참여해 그 작품의 가치를 더해주었다.
‘Starmania’아 이후에도 베흐제는 그의 아내 프랑스 걀과 함께 음악 세계를 지속한다. 그리고 80년에 그의 생에 처음으로 개인 콘서트를 열게 되는데, 이 콘서트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가진 베흐제는 앨범 작업과 함께 여러 차례 대형 콘서트 공연을 하게 된다. 그의 명성은 이웃 나라 영국에까지 전해져서 엘튼 존은 베흐제에게 음악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뿐만 아니라, 조니 할리데이(Johnny Hallyday), 장-자크 골드만(Jean-Jacques Goldman)과 같은 가수들에게도 노래를 작곡해주는등 계속해서 작곡가로의 작업도 왕성하게 해나간다
92년 미셀 베흐제와 프랑스 걀은 처음으로 두 사람의 듀엣 앨범 ‘Double jeu’를 발표하고, 가을에 콘서트를 열 계획을 했었다. 그러나 그해 여름 남불의 별장에서 바캉스를 보내던 베흐제는 테니스 경기 중 갑작스런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결국 이듬해 프랑스 걀 혼자 무대에 오르게 되었고, 97년 딸의 사망으로 프랑스 걀도 무대를 떠난다.

미셀 베흐제는 가수로써보다는 작곡가, 작사가로서 더 명성을 날렸었고,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던 그는 노래 속에 자신의 삶과 사유를 자유롭게 펼쳤다. 또한 그는 이디오피아의 굶주리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 프랑스 걀과 함께 그들을 돕기 위한 단체를 만들정도로 사랑을 실천했던 아티스트였다. 사후 1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미셀 베흐제는 여전히 프랑스가 가장 사랑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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