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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Art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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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is Theodorakis(미키스 테오도라키스)

M 조회 수 1434 추천 수 0 2005.09.27 18:56:53


1970년 9월, 영국의 유명한 음악회장 로열 앨버트 홀에서는 거의 15분간이나 계속해서 열광적인 박수갈채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와 아우성이 음악회장의 넓은 공간을 계속 뒤흔들었다. 수천의 객석을 가진 로열 앨버르 홀은 반 이상이 그리스 레지스탕스 청중들로 채워져 눈물과 환호의 바다를 이루었다.
  이윽고 이미 여덟 번씩이나 커튼콜을 받았던, 다부지게 생긴 곱슬머리의 작곡가 겸 지휘자가 검은 터들네크 차림으로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는 장엄한 그리고 격정적인, 그 위에 애타는 열정이 도도히 흐르는 곡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그 곡은 '영혼의 행진 March of the sprit'이었다.
  씩씩하고 애국적인 8성부의 오라토리오는 대규모의 런던 교향악단과 3명의 독창자, 그리고 장엄한 합창과 3대의 그리스 고유의 민속악기인 부주키 Bouzouki, 거기에 혁명군의 세속적인 목소리까지 등장하는 일대 파노라마였다. '영혼의 행진'은 작곡자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에겐 새로운 음악적 차원이었다. 영국의 런던에서 시작한 그의 '영혼의 행진'은 그 뒤부터 4년 동안이나 실로 격렬하고 투지에 넘치는 행진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74년 7월, 작열하는 한여름의 태양 아래 그리스의 아테네 공항에서는 장엄한 '영혼의 행진'이 다시 한 번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스 육군의 일개 대령이었던 게오르기 파파도폴로스에 의한 수년간의 압제 정치 기간 동안, 해외에서 끈질긴 레지스탕스를 멈추지 않았던 자유의 투사들이 그들의 나라, 바로 민주주의의 본향에 다시 찬란하게 떠오르는 자유의 태양을 온몸에 받으며 속속 귀국하고 있었다.
   민주주의의 고향에 민주주의는 다시 그 강렬한 햇빛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부신 태양을 전신에 받으며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실로 꿈에 그리던 조국의 땅을 밟고 있었던 것이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국내에서도 TV를 통해 방영된 바 있는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소설 '희랍인 조르바 Zorba the Greek'의 영화에서, 그리스 고유의 악기 부주키를 사용하여 특이한 분위기를 전해 주는 음악으로 유명한, 우리에게도 전혀 생소 하지 않은 음악가다.
   우리나라에서의 그의 인기를 말해 주는 음악으로 멜리나 메르쿠리와 안소니 퍼킨스가 공연한 영화 '죽어도 좋아 Phaedra'의 테마 음악을 들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 Never on Sunday'로 1961년도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한 동료 작곡가 마로스 하지다키스와 함께, 그는 그리스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 추방되면서까지 용감히 싸운 행동하는 음악가, 반독재 투쟁의 선봉으로 전세계에 알려진 바 있다.
    1925년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1950년대엔 파리에서 음악원 학생으로 있었고, 그 뒤 교향곡과 발레 음악의 작곡가로 활약했다. 1960년대에 그는 고국의 민속 악기 부주키에 매료되어 그리스의 현시대에 부주키 음악을 작곡해서 그리스의 민속음악 보급에 전력을 다했다. 그리스에서는 그의 음악을 흔히 '심오한 대중 음악 Laiki Moussiki'이라고 불렀다. 길거리의 어느 술집에서건, 어떤 화려한 음악회에서건, 그의 부주키 음악은 빠지지 않고 흘러나왔다.
  그리스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대부분이 이국에서의 하룻밤을 스타 부주키아(Sta Bouzoukia :부주키 악단이 연주하는 식당)에서 보내며, 그리스 민중의 입김을 느낀다. 말하자면 프랑스의 샹송 카페, 스페인의 플라멩코 주점 등의 그리스 판이 스타 부주키아인 셈이다.
  스타 부주키아에서 연주되는 부주키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긴 목을 가진 류트계의 발현 악기를 가리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바로 그 악기 부주키를 주역으로 한 소편성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을 가리킨다. 스페인의 기타와 마찬가지로 부주키는 그리스 민중의 생활감정을 노래하는 최고의 수단이라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영화 '희랍인 조르바'와 그리스 군사정권의 정치적 음모를 그린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 'Z'에서 들려 준 것도 바로 부주키의 독특한 울림이었다. 하지만 그는 반독재투쟁의 중심인물로 지목되어, 그리스의 군사정부는 그의 음악을 모두 금지곡으로 지정하여 그리스 국민 중에 그의 음악을 듣거나 흥얼거리면 모두 범법자로 다룬다고 발표했다. 파파도폴로스의 군정은 그의 국민적 작곡가로서의 위치와 입장을 변형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지만, 묘하게도 그의 노래가 불려지고 있는지를 조사하러 다니던 경찰관이 무심코 그의 노래를 콧소리로 흥얼거렸다 하여 투옥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그리스 국민들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것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그리스의 국민적 작곡가로서 얼마나 많은 그리스 민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가를 증명하는 하나의 에피소드이다.
   그리스 군사정부는 그가 투옥이 되자 곧 그의 음악이 국민들 사이에서 더욱 큰 인기를 불러모으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 금지곡으로 되어 있는 '영혼의 행진' 'Don't forget us' 'Along the sea' 같은 테오도라키스의 노래들은 사실 그의 투옥을 계기로 해서 더욱더 큰 인기를 얻으면서 암암리에 퍼져나갔던 것이다.
  그는 옥중에서 자신의 민주주의와 민중에 대한 입장을 더욱 공고히 했다. 아무도 그의 명상과 작곡에의 몰두를 방해할 수 없었고 동료 죄수들은 오히려 그를 도왔다. 노래나 시는 그에게 서정적이며 가락적인 음악의 뼈대였다. 그리고 조국 그리스의 모든 것이 그의 영혼의 샘이었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노래의 의미는 바로 폭탄이다. 그래서 나는 그 강한 에너지를 더욱 높은 강도로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다른 곳 아닌 바로 나의 조국 그리스의 비극이 있는 곳에.
   그는 옥중에서 그리스 민중들의 일상생활에 그리스적인 음악이 대중음악으로서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희랍인 조르바' '서피코' 'z' 같은 영화음악도 서슴없이 작곡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는 의회에도 진출하여 작곡가 · 정 치가로서 전면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파파도폴로스에 의해 갑작스럽게 추방되고 말았다. 그에 대한 탄압으로 세계 여론의 맹렬한 지탄을 받은 그리스 군정이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국외추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추방된 지 석 달 만에 그는 역시 그보다 먼저 망명했거나 추방된 수천의 해외거주 그리스인들의 도움으로 런던의 로열 페스티발 홀에서 감동적인 연주회를 열 수 있었다.
   청중의 대부분이 조국 그리스의 흙내음과 태양을 못 잊어하는 그리스인들이었다. 그들은 파리 ·로마에서부터 런던으로 모여들었다. 그를 환호하는 그리스인들의 함성은 하늘 끝에 닿을 듯했다.
   나는 결코 정치적인 음악가가 아니다. 나의 음악이 그리스 국민의 불행한 감정을 깊이 표현하고 있어서 정치적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나의 모든 음악은 그리스 민중생활의 크고 작은 일에 바치는 것이다. 나는 자유를 되찾으려는 그리스인의 노력과 관계없는 단순한 음악 행사에는 흥미를 느낄 수 없다.
  미국에서도 그는 수없이 많은 공연을 가졌다. 8개의 줄이 달린 부주키로 그리스 시인 게오르기 세퍼리스와 칠레의 노벨상 수상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노래로 작곡했다.
   '불을 끄세요 수사관이 찾아왔어요 오늘밤 그는 다시 올 거예오'라는 노래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는 그리스의 여가수 마리아 파란투리를 대동해서 케네디 센터에서도 공연을 가졌고, 그때마다 각지에서 해외거주 그리스인들이 모여들어 조국의 민주화를 함께 열망했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도처에서 망향의 집념을 토로했다. 파리의 집에서, 런던의 연주회에서, 링컨 센터에서‥‥‥
   나는 그리스 없이는 살 수 없다. 얼마나 아름다울까. 젊은이들이 플라카에서 노래하고 시를 읊는 광경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나의 궁극적인 꿈은 나의 국민 앞에서 다시 연주하는 것이다. 그리스 청중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만족을 얻는 것이다.
   이 위대한 민중의 음악가가 그렇게도 절실히 염원하던 그리스 군사정권의 붕괴는 마침내 현실로 이루어졌다. 1974년 7월, 길고 힘든 방랑과 투쟁 끝에 음악가이기에 앞서서 진정한 그리스인 이었던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찬란한 그리스의 태양을 전신에 밟으면서 다시 조국의 땅을 밟은 것이다.
     그의 삶과 음악이 뿌리박는, 그 모든 것이 샘물처럼 솟아날 수 있는 곳은 오직 그의 고국 그리스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59세가 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의사인 아내와 23세 된 딸, 22세 된 아들을 가진 온건한 가장이다. 그러나 그리스 민중의 음악과 민주주의를 생각할 때는 그야말로 독수리가 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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