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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io Rodriguez (실비오 로드리게스)

S 조회 수 2629 추천 수 0 2005.09.21 20:40:05


쿠바의 아티스트입니다. 쏜, 살사가 득세를 하던 쿠바에서 새로운 음악운동을 주도했던 아티스트,, 파블로 밀라네스와 그리고 또 한명이 있죠. 바로 Silvio Rodriguez입니다. 실비오 로드리게스는 70년대부터 현재까지도 활동하고 있는데요. 쿠바의 국영 레코드사를 통해 데뷔를 하고,, 스페인어권 국가들로부터 찬사를 받게 되죠. 그리고 쿠바사람들의 문화적, 정신적인 지주로까지 숭배를 받습니다.

누에바 뜨로바: 누에바 깐시온의 꾸바 버전

            
1991년, 혁명 이후의 꾸바 음악을 미국시장에 소개한 루아카 밥(Luaka Bop) 레이블의 [Cuba Classics] 시리즈의 제 1탄의 주인공은
실비오 로드리게스(Silvio Rodriguez)라는 인물이었다. 이 음반의 표지에는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다.



            
미국인들에게 ‘아름답고 미묘한 가사를 가진 전형적 꾸바 스타일의 팝 음악’이라고 설명해야 어떤 음악인지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을 꾸바에서는 ‘누에바 뜨로바’라고 부른다.

‘누에바’란 ‘새롭다’는 뜻의 형용사고 ‘뜨로바’는 ‘음유시인’이라는 뜻의 명사인 trovadore'의 축약어이니, 직역한다면 ’신음유가요‘ 정도쯤 될 것이다.


그 전에 한가지 사실을 더 언급하자. 꾸바 음악이 미국시장에 다시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가 루아카 밥의 시리즈 음반은 아니다.
민주당의 지미 카터의 대통령 재임시기(1977-80)에도 어느 정도 해빙 무드가 있었고, 음반이 정식 발매되지는 않았어도 공연은 허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최초로 미국 순회공연에 나선 꾸바의 음악인들인 그루뽀 몽까다(Gruppo Moncada) 역시도 누에바 뜨로바에 속하는 그룹이다.
그렇다면 누에바 뜨로바는 꾸바 음악의 여러 장르들 중에서 다른 것보다 먼저 ‘적성국’에 소개되고 수용된 음악이라는 뜻일 것이다.
추론하면 수출하는 측은 ‘꾸바를 대표할 수 있는 음악’으로 생각했고, 수입하는 측은 ‘꾸바 음악 가운데 비교적 좋은 음악’으로 판단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뛰어넘어 예술성이 뛰어난 대중음악’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누에바 뜨로바는 꾸바에 고유한 명칭이지만 이것은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이라는 말로 통칭되는 1960-70년대 라틴 아메리카 전역의 ‘노래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발전했다.
칠레의 빅토르 하라(Viktor Jara)와
비올레따 빠라(Violeta Parra),
아르헨티나의 아따후알빠 유빵뀌(Atahualpa Yupanqui)와 메르체데스 소사(Mercedes Sosa) 등은 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져 있고, 넓게 본다면 브라질의 ‘노바 무지까 뽀뿔라이레 브라질레이라(Nova Musica Populaire Brasileira: 새로운 브라질 대중음악)도 여기에 포함되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누에바 뜨로바는 범(凡) 라틴 아메리카적 대중음악의 일부다(이는 종종 다른 나라에서 창작된 음악을 커버하여 연주하는 연대의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뜨로바로부터 누에바 뜨로바로

그런데 왜 ‘누에바’ 뜨로바일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19세기부터 존재해 왔던 뜨로바라는 장르의 존재 때문이다.
꾸바 최초의 대중음악이라고 할 만한 뜨로바는 과라차, 과히라, 뿐또, 룸바, 볼레로 등 국지적으로 존재하고 있던 노래형식들을 포괄하고 유럽(주로 이탈리아)의 오페라의 멜로디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뜨로바는 한두명의 가수가 기타 반주로 연주하고 끌라베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고 20세기 초에는 6인조 그룹의 형태로 발전했다.
마리아 떼레자 베라(Maria Teresa Vera)나 베니 모레(Benny More) 같은 경우는 1910년대부터 뜨로바의 ‘레코딩’을 남긴 뜨로바 가수로 기억해 둘만 하고, “El Manisero(땅콩장수)”라는 국제적 애창곡도 뜨로바의 산물이다.
뜨로바는 1920년대 이후 손(son) 등 아프로-꾸바 댄스음악이 대중화됨에 따라 쇠퇴했지만, 초기의 트리오 형태로 꾸바 각지에서 연주되어 왔다.
그러던 것이 꾸바 혁명 이후 ‘전통 문화(native culture)'에 대한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누에바 뜨로바로 ’업데이트‘된 것이다.


그렇지만 누에바 뜨로바를 혁명 이후 사회주의 정권의 ‘정책적 육성’의 산물로 간주하기도 힘들다.
1950년대 중반부터 까를로스 뿌에블라(Carlos Puebla)는 로스 뜨라디시오날레스(Los Tradicionalles)라는 그룹을 이끌면서 전통적 노래형식을 발굴하고 시적·문학적 가사, 시사적 메시지를 담았다.
이 점에서 그는 ‘꾸바 혁명의 음악적 대표자’로 불리며,
그의 업적은 우디 거쓰리(Woody Guthrie)나 피트 시거(Pete Seeger)같은 미국의 모던 포크 음악인들에 비견할 만하다.
누에바 뜨로바는 혁명 이전부터 존재하던 뜨로바의 전통과 혁명 이후 정권의 야심적인 문화정책이 결합하여 태어난 것이다.

            




그 점에서 꾸바의 누에바 뜨로바는 다른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의 누에바 깐시온과는 상이한 정치적 컨텍스트 하에서 발전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들에서 누에바 깐시온이 군부독재라는 적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탄생하고 발전했다면 누에바 뜨로바는 1959년의 혁명이 성공한 뒤에 조성된 상황 속에서 일궈졌다는 이야기다.
정부의 직·간접적 후원을 받은 <영화예술 및 영화산업 연구소> 산하에 ‘음향실험 그룹’이 만들어졌고 여기서는 예술음악인과 대중음악인의 협동 작업을 통해 민속음악을 발굴하고 악기들을 개발·개량하는 등의 작업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
1972년 이후에는 꾸바 전역에 대표부를 둔 대중적 조직으로 발전했다. 조직의 회원들은 작품, 예술, 정치, 조직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며 자체적인 조직과 활동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누에바 뜨로바의 가수들은 민중 공원, 아바나(Havana), 광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활동하고, TV와 라디오에서 특별시간을 할애받는 등 보다 많은 청중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특히 노엘 니촐라(Noel Nichola)와 빈센테 펠리우(Vincente Feliu) 등의 인물들이 누에바 뜨로바의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상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누에바 뜨로바의 가사가 조국에 대한 사랑,
혁명과 혁명 영웅의 찬미, 사회적·정치적 저항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니까라구아, 칠레,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나라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빼놓을 수 없다.
즉, 누에바 뜨로바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음악이다. 이런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시적 가사와 서정적 멜로디는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갔다. 말하자면 정서적 공감과 정치적 교양 양면 모두에서 효과적 수단이었던 셈이다.
그 가운데 1970년대 중반부터는 누에바 뜨로바의 ‘대중스타’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실비오 로드리게스와 빠블로 밀라네스(Pablo Milanes)다.


            -             누에바 뜨로바의 국제적 스타: 실비오 로드리게스와 빠블로 밀라네스
            -



1976년에 레코딩 경력을 시작한 실비오 로드리게스의 음악은 꾸바의 민속음악에 바탕을 둔 누에바 뜨로바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이 말은 촌스럽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정갈하고 담백하다는 뜻에 가깝다.
영미의 싱어송라이터들의 느낌과 함께 프랑스 샹송의 영향도 보인다
(샹송 역시 음유시인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초기에는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연주하는 소박한 노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악기를 사용하여 대곡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보여줄 때도 있다. 그럴 때조차 플루트나 브래스 섹션을 이용한 어쿠스틱 편곡으로 특유의 담백함을 잃지는 않는다(물론 (1986)처럼 아프로 꾸바 음악의 리듬을 대폭 차용한 작품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렇게 친숙한 멜로디와는 반대로 그의 가사는 라틴 아메리카 각국의 독재정권의 폭정과 그 아래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그의 음악은 낭만적 곡조와 급진적 메시지가 조화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속음악에 바탕하면서도 ‘모던’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실비오 로드리게스가 소박한 정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빠블로 밀라네스의 음악은 ‘고품격 팝’의 느낌이 보다 진하게 배어 있다.
특히 최근의 발표작들은 여느 이지 리스닝 음악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안락한 무드를 선사한다.
언뜻 들으면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의 음악으로 착각될 정도로. 이는 1980-90년대를 풍미했던 뉴에이지풍의 악기편성과 흡사한 편곡 때문이지만, 바이브레이션이 많은 낭만적 톤의 목소리 때문이기도 하다.
곡의 가사는 넬슨 만델라의 옥중 투쟁이나 살바도르의 아옌데의 피살 같은 과격한 주제를 담고 있을 때도 있지만, 평이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경우도 많다.
서양 세계와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사회주의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처럼 부드럽고 감미로운 팝 음악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의아스러울 정도다.



이제 정리하자. 누에바 뜨로바는 민속음악과 대중음악이 만나 민족문화를 형성한 모범적 사례일까? 한 나라의 대중음악이 진정한 민중들의 삶을 반영함과 동시에 그들의 지지를 받고, 그 민중의 삶이 전통에서 이어지는 자국의 고유성을 담고 있다는 점은 분명 좋은 점이다.
또한 예술성의 추구와 사회성의 반영을 동시에 달성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불현듯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영웅적으로 훌륭했던 시기를 박제화한 것 같다는 느낌 말이다.
또한 음악이 너무도 ‘건전’해서 민중의 ‘퇴폐적’ 정서와 괴리될지 모른다는 점도. 누에바 뜨로바가 ‘민중가요이자 관변가요’라고 한다면 다소 심한 표현일 것이다.
다음 문장을 음미해 보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자.
“망명한 꾸바 음악인들은 빠블로 밀라네스가 까스뜨로를 견고하게 지지하는 것을 조롱했고, 다른 이들은 그가 센티멘털하고,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재즈 팝에 손을 대는 것을 비판했다.
그렇지만 그는 꾸바의 전통음악과 현대음악 사이의 가장 중요한 고리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고, 이 지위는 새로운 밀레니엄에 접어들어도 확고한 상태다.”  

80년대 초에 발표됐던 그의 대표작 'Unicornio'는, 쿠바사람들 마음속의 서정성과 혁명에 대한 정신을 서정적으로 잘 풀어냈습니다.

■ Unicornio (유니콘)

유니콘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이 참 많았습니다. 80년대 서방세계에서는, 자유세계의 낭만과 꿈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추측했죠. 그러나 실비오 로드리게스는 한 인터뷰에서 잃어버린 순수함, 순수한 혁명의 정신을 고취시키고자 이런 곡을 만들었다고 대답했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 이것이 바로 유니콘이 존재하는 꿈의 세상이다, 라는 것이죠. 그는 이 곡을 통해서 서방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고요.

그가 서정성과 음악성, 예술성을 확실히 인정받게 된 결정적인 작품은 'Rabo de Nude'라는 음반입니다. 이 중에서 타이틀 곡, Rabo de Nube 들어보시죠.

■ Rabo de Nube (구름의 꼬리)

■ Ojala (제발)

Rabo de Nube는 까띠아 카르데날의 리메이크 곡으로 잘 알려져 있고, Ojala는 솔레다드 브라보가 불러서 친숙해진 곡이죠. 이들 이외에도 라틴아메리카 출신 가수라면 실비오 로드리게스의 곡은 한번쯤 불러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실비오 로드리게스의 작품들을 보면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다. 얼핏 보면 서정성, 예술성을 갖고 있습니다만, 한꺼풀만 벗겨보면, 인간에 대한 고뇌, 철학적인 내용들을 아주 깊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죠. 때로는 정치적인 성향도 지니고 있고, 공격적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실비오 로드리게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 본연에 대한 따스한 사랑, 살아가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입니다.

그가 누에바 뜨로바 운동을 주도했던 이유는 20세기 초반에 쿠바를 지배했던 음악들은 이런 고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파블로 밀라네스와 함께 진정한 쿠바의 음악을 찾기 위해 새로운 시도와 노력들을 하게 된 것이죠.

실비오 로드리게스는 사랑에 관한 노래, 연가들도 많이 만들었는데요. 그 중에서 그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는 'Te Amare'라는 곡을 들어보겠습니다.

■ Te Amare (너를 사랑해)

■ O Melancolia (오 멜랑콜리)

O Melancolia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의 2악장 편곡한 곡입니다.

실비오 로드리게스의 아티스트 스페셜 오늘 끝 곡은 최신음반 'Expedicion' 가운데서 골랐습니다.

그가 누에바 뜨로바 운동을 이끈지도 3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세상이 바뀌어서, 지금은 또 트로바, 쏜,, 이런 오랜 쿠바 음악들이 재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비오 로드리게스의 음악은 언제나 투명한 서정성, 그리고 예술성 때문에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고요. 또 그는 앞으로도 늘 새로운 음악들을 끊임없이 선보일 것입니다.

■ El Baile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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