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오리에마의 이력은 상당히 특이하다. 그의 아버지는 우간다의 악명 높은 독재자
이디 아민(Idi Amin) 정부의 내각 각료였다. 그러나 1953년 생인 오리에마가 24세가 되던 1977년 그의 아버지는 우간다 민주 단체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이후 그는 프랑스 파리로 망명하여 오늘까지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다(그의 첫 앨범 제명은 <귀양>이다).
그리고 그는 비폭력·평화주의 운동의 길을 걷는다.
대부분 우리 주변을 보면,
이런 경우 자녀들은
아마도 그들로서는 인지상정일 - 복수 혹은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마약 중독자가 되거나, 어처구니없게도 아버지 행위의 올바름을 강변하거나, 혹은 심지어 반동적인 정치 참여를 꿈꾸기도 한다.
이 경우 '그의 행복'은 '우간다 민중의 불행'이 될 것이나, 우리는 오리에마의 선택을 그와 우간다가 '모두 사는 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게이브리얼은 잘 알려진 것처럼 '국제 사면 위원회'(The Amnesty International)에 직접적으로 참여·활동하고 있는 대표적 국제적 인권 운동가이다.
게이브리얼과 오리에마의 만남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