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da Viva로 인하여 크게 낙담한 그는 Buarque는 이태리로 돌아와서 1년을 보내며 그 후 브라질로 돌아가게 되는데 tropicalias의 대부분 주역들로 외국으로 망명을 갔고 뛰어난 음악인들은 정부의 검열에 걸려 음악활동을 거의 못 하고 있었다.
1971년 그는 Constracao앨범을 녹음하게 되는데 이 앨범은 그의 예전 bossa nova와 samba성향을 띄는 예전 앨범과는 차별성을 지니게되는 앨범이 된다.
그는 이 앨범의 절반 이상의 곡에서 이전 앨범에 보이지 않던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담고 있었으며 그 당시 그의 곡들은 검열당국에서 몇 번씩 검열하고 고치기를 되풀이하였다.
1974년에서 1975년까지는 아예 그의 곡들은 살아남지 못 할 정도로 가혹하게 검열이 행해졌을 정도이다.
워낙 검열이 심해서 "Acorda, Amor" 라는 곡은 가상의 인물인 Julinho de Adelaide라는 이름으로 검열을 통과하기도 한다. 1972년, 이전의 그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던 Buarque, Veloso, Gil 등이 귀국하게되면서 그들과 교류하게 되고 1970년대 중반까지 그들과 같이 음악을 하게되며 음반도 녹음하게 된다.
1977년과 1979년 그의 누나인 Miucha가 Jobim과 함께 앨범을 녹음하게되는데 이 앨범에 곡을 써 주게 되고 그 또한 이 앨범에 참여하게 된다.
1980년대 들어 Buarque는 노래보다는 작곡에 더욱더 매진하게되며 몇몇 놀라운 곡들을 발표하고 녹음하게되며, 1986년 Gilberto Gil가 음악적 이견을 보인 Caetano와 TV 쇼를 진행하기도 한다.
1990년대 들어 1993년 Paratodos, 1998년 as cidades같은 걸작앨범을 발표하게 되며 희곡과 소설 몇 편을 발표하고 영화에 관여하는 등 영역을 넓혀가게 된다.
그러나 이런 모든 작업은 브라질의 다양한 문화적 자산과 현재와의 인과 관계 그리고 한없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알리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30년 동안 Chico Buarque는 그는 대중의 자신에 대한 stardom을 경계하였으며, 결국 현재 브라질에서 Caetano와 비견할 정도로 존경받는 음악인중의 한 명이다.
그는 1998년 Mangueira Samba School의 theme로 정해지기도 하였으며 그 해 Mangueira Samba School가 우승하게 된다.
1) tropicalista들은 일렉트릭 악기에 대해 친근감을 가지고 젊은이들에게 다가간 반면에 Chico는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그리고 많은 지식인층에서는 전자악기는 미국제국주의와 상징처럼 여겨졌기에 tropicalista들은 보수주의자 지식층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
2) Antonio Carlos Jobim도 Mangueira Samba School의 theme로 정해졌지만 그 해 Mangueira는 6위를 했다.
국제적 인지도와 달리, 브라질 내에서 중산층을 대변하는 Jobim의 위치와 중산층과 흑인빈민 favela을 아우르는 Chico의 위치를 비교하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