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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ge Gainsbourg (세르쥬 갱스부르)

S 조회 수 2432 추천 수 0 2005.09.21 19:59:55


            










'현대 프랑스 샹송의 이단자'로 불리는 세르쥬 갱즈부르(Serge Gainsbourg)는
금기시되던 소재를 음악으로 담아내고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보수적인 프랑스 음악의 전통을 과감하게 흔들어 놓은 인물이다.
            
아름답기만 하던 프랑스어를 해체시키고 그 안에 리듬감을 끼워 넣음으로써 샹송예술의 신천지를 개척했다.
            
술과 담배,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과의 사랑 이야기로 점철된 그의 생애는 예술가만을 통해서 목격할 수 있는 자유와 반란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두 번 다시는 나오지 않을 이 천재 뮤지션에 의해 굳게 닫혀 있던 프랑스 음악의 문은 세계로 활짝 열렸다.
            
1928년 파리에서 태어난 세르쥬 갱즈부르는 나이트 클럽 등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음악을 접했다.
            
아버지와 달리 화가가 되고 싶어했지만, 위대한 화가가 되지 못할 바엔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뛰어난 작곡가와 프로듀서로서 이름을 남기고 싶었던 그는 이내 자신의 노래를 직접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1958년 내놓은 첫 작품 〈Du Chant A L'Une〉부터 기괴한 소재와 강한 비트, 그리고 재즈가 결합된 음악을 선보이며 소수의 매니아들을 확보했다.


그는 1961년 〈L'Etonnant Serge Gainsbourg〉,
1963년 〈Gainsbourg Confidentiel〉을 통해 꾸준히 차트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1960년대의 음악 상황은 그에게 불리하게만 흘러갔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비틀스와 같은 새로운 영국 팝에 열광했다.
낙담한 그는 한때 다시 그림을 그릴 것도 고려했지만, 다양한 음악을 수용하면서 이 위기를 극복했다.
            
1964년의 〈Gainsbourg Percussions〉은 영미의 음악에 아프리카 리듬까지 차용한 음반이었다.
            
레코드는 곧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통 프랑스 음악 진영에서는 그를 곱게 보지 않았다.
그는 한 좌파 지식인 클럽에서 공연을 하다 야유를 받고 무대를 내려와야만 했다.
충격을 받은 그가 다시 무대에 서기까지는 이후로 14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다른 가수들, 특히 미녀 배우들에게 히트곡을 써주기로 유명한 그는 수많은 염문설을 뿌렸다.
'Hier ou demain'을 히트시킨 마리안느 페이스풀(Marianne Faithfull)의 뒤를 이어 브리지뜨 바르도(Brigitte Bardot)가 그의 레이더에 포착됐다.
            
둘은 곧 뜨거운 관계로 발전했고 'Harley davidson', 'Bonnie and clyde'와 같은 노래를 같이 했다.
영원한 문제작 'Je t'aime...moi non plus'에서 둘은 외설시비에까지 휘말렸다.
그러나 이 노래가 주변인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브리지뜨 바르도는 그와 거리를 두었고, 세르쥬 갱즈부르는 다시 한번 실의에 빠졌다.


새로운 미녀들을 만남으로써 절망을 떨쳐낼 것을 다짐한 그는 곧 난봉꾼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그러던 중인 1968년, 그는 필생의 동반자가 되는 제인 버킨(Jane Birkin)을 만났다.
            
갱즈부르는 당시 20살에 불과했던 제인 버킨과 함께 새로운 버전의
'Je t'aime...moi non plus'를 녹음했다.
            
침대 밑에 녹음기를 두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뜨거운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이 노래는 특히 버킨의 신음으로 전 유럽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각 나라에서 판금조치가 잇따랐고, 교황청에서는 그들을 파문했다.
그러나 노래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앨범 〈Serge Gainsbourg & Jane Birkin〉(1969)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마침내 세르쥬 갱즈부르는 프랑스 음악계에 결정적인 충격을 안겨주며 슈퍼스타로 올라섰다.


그 생애 최고의 걸작이라는 〈Histoire de Melody Nelson〉는 1971년에 나왔다.
중년의 남자와 십대 소녀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이 음반은 에로틱한 분위기와 시적인 가사, 반사회적인 일련의 소재가 혼합된 완벽한 록 오페라였다.
            
예술적인 완성도에 취한 세르쥬 갱즈부르는 'La Decadanse'라는 야한 자세까지 만들어내며 제인 버킨과 함께 즐거워했다.
            
그 후로도 도발적인 음악 실험은 계속됐다.
1972년 공식적으로 제인 버킨과 결혼한 그는 섹스와 갖가지 추잡한 소재들을 이야기하는 〈Vu de l'Exterieur〉(1972)에서 펑키한 록을 선보였다.
            
프랑스인들이 혐오하는 나찌를 끌어들인 〈Rock Around the Bunker〉(1975)에서는 50년대 로큰롤 분위기를 경쾌하게 그려냈다.
            
머리가 배추로 변하는 변태적인 젊은 살인자를 소재로 한 두 번째 컨셉트 앨범
〈L'Homme A Tete De Chou〉(1976)가 계속 이어졌다.


이 작품들은 프랑스 언어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말의 독특한 리듬감을 실현해냈다.
1979년에는 프랑스 언어로 불가능해 보였던 레게에도 도전했다.
자메이카 현지 음악인들과의 협력을 통해 만들어낸 〈Aux Armes et Caetera〉를 통해 레게가 프랑스 어법으로도 가능한 장르임을 경이롭게 증명했다.
            
그는 신성한 국가 'La Marseillaise'를 레게로 바꿔 놓고, 보수적인 프랑스 사회를 다시 한번 들쑤셔 놓았다.
            
한때 그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고, 공연장에서는 벼르고 있던 군인들을 상대로 정상적인 국가를 불러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갈채에 답하면서도 슬쩍 중지를 세우는 행위를 잊지 않음으로써 또 한번 반사회적인 영웅이 됐다.
            
그러는 동안 제인 버킨은 비정상적으로 술과 담배를 가까이 하던 남편을 점점 견뎌내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1980년 그를 떠났다. 혼자가 된 세르쥬 갱즈부르는 또 한번의 변태적인 소재를 담은 레게 음반〈Mauvaises Nouvelles des Etoiles〉(1981)를 내놓았고, 21살의 새 애인을 만났다.
1984년엔 근친 상간의 분위기를 풍기는 〈Love on the Beat〉를 발표하고, 딸 샤로뜨 갱즈부르(Charlotte Gainsbourg)와 함께 한 'Lemon incest'로 스캔들을 일으켰다.
그는 생방송 TV쇼에서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자고 싶다(fuck)는 발언을 함으로써 나이가 들어도 식지 않는 '갱즈부르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1987년 마지막 음반인 〈You're Under Arrest〉를 발표한 후부터 그는 급속히 쇠약해져 갔다.
이미 과도한 흡연과 음주로 인해 여러 번 심장 이상을 일으켰던 그는 결국 1991년 3월 2일 자신의 침대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수많은 음악인들이 줄을 지어 조의를 표했다.
            
프랑스 대통령인 자끄 시락(Jacque Chirac)도 자신이 좋아하는 세르쥬 갱즈부르의 노래를 언급하며 위대한 음악가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미 사후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대중들은 상상을 뛰어넘은 그의 음악과 인생에 열광한다.
영미의 젊은 음악인들까지도 자신들이 세르쥬 갱즈부르에게 경도되었음을 시인하며 끝없는 존경을 표한다.
세르쥬 갱즈부르는 엇갈리는 찬사와 비난에 관계없이 현대 프랑스 음악의 위대한 거목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그의 또 다른 이름과도 같았던 제인 버킨은, 세르쥬 갱즈부르가 다른 가수들에게 주었던 곡들만을 모아 다시 부른 〈Versions Jane〉을 1996년에 내놓았다.
            
떠나버린 연인에 대한 향수로 가득한 이 음반은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그들의 사랑에 마지막 한줄기 아름다움을 더했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프랑스 음악계에서는, 항상 자신들의 음악 전통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죠. 그래서 조금이라도 다른 문화권의 예술 양식을 도입한다든지 하는 기존 전통에 반하는 내용을 아티스트가 시도한다면 항상 초기에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미셀 폴나레프(Michel Polnareff)가 그랬고, 쟈니 할리데이(Johnny Hallyday)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프랑스 샹송의 전통에 록큰롤을 도입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샹송계의 이단아"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고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초기에는 샹송의 전통을 따라가지만, 이후 그가 보여준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죠. 생방송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프랑스 프랑 지폐를 태우는가 하면, 진행자에게 던진 직설적인 표현 등은 언제나 그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대해 격렬한 찬반양론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고 없는 지금, 프랑스에서는 그 누구도 세르쥬 갱스부르에 대해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가 걸어왔던 행보야말로 '아티스트'만이 해낼 수 있었던 여정이었으니까요.

그가 만들고 발표한 작품은 수없이 많습니다. 제인 버킨에게 준 '사랑해... 더 이상은 아냐(J'taime moi non plus)'라는 인상적인 제목의 작품, '프레베르의 노래(La chanson de Prevert)', '데카당스(La Decadense)' 등이 있는가 하면, 샹송과 레개를 결합한 작품, 직설적인 록, 그리고 다시 정통 샹송으로의 회귀... 음악적인 면만 놓고 보자면 그가 할 수 있는 실험은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범인이 결코 생각해낼 수 없는 가사들은 세르쥬 갱스부르를 예술가로서 불리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세르쥬 갱스부르의 곁에는 항상 여자가 끊임없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디뜨 피아프를 시작해 브리지뜨 바르도, 쟌느 모로, 프랑소와즈 아르디, 프랑스 갈, 이자벨 아자니,... 결코 화려하고 매력적인 외모는 아니었지만, 그의 예술은 곧 여인들에 대한 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세르쥬 갱스부르는 자신의 작품들을 여자 가수들과 배우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여인들을 이야기해도,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여인이 있지요. 바로 제인 버킨(Jane Birkin)이었습니다. 영국 출신으로 세르쥬 갱스부르의 세 번째 아내가 되었고, 이후 이혼하면서도 음악적 관계는 계속 유지했던 특이한 커플이 바로 갱스부르-버킨이지요. 이들 사이에서는 샤를로뜨 갱스부르가 태어났고, 이후 세르쥬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가장 슬퍼했던 사람이 바로 제인 버킨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공연 실황 음반 '아라베스크(Arabesque)'는 세르쥬의 작품을 제인 버킨이 아랍 풍으로 재해석한 무대 공연을 담고 있습니다.

담배, 영화, 여인, 그리고 음악. 이들이야말로 세르쥬 갱스부르가 생전 사랑했던 존재들이었고, 그가 사랑하는 방식과 그 결과물 - 세르쥬의 음악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M7 - Ballad de Johnny Jane
(쟈니 제인의 발라드)

M8 - La Chanson de Prevert
(프레베르의 노래)

M9 - Je suis venu te dire que je m'en vais
(떠난다는 말을 네게 하러 왔어)

M10 - Couleur Cafe
(커피빛 색깔)

M11 - France Gall / Poupee de cire poupee de son
(프랑스 갈 / 꿈꾸는 샹송 인형)

M12 - Francoise Hardy / Comment te dire adieu?
(프랑소와즈 아르디 / 안녕이라 말할까?)

M13 - Brigitte Bardo & Serge Gainsbourg / Bonnie & Clyde
(브리지뜨 바르도 & 세르쥬 갱스부르 / 보니와 클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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