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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unzio Paulo Mantovani

A 조회 수 1479 추천 수 0 2005.09.27 18:24:40


만토바니 (Annunzio Paulo Mantovani; 1905∼1980)
弦의 폭포, 노래하는 바이올린
   20 여 년에 걸친 내 음악의 편력에 있어서 제일 먼저 귀에 익혔던 음악이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 곡이었다.
   어린 시절 국민학교에도 입학하기 전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때 스트라우스의 왈츠곡 '아름다운 푸른 다뉴브'를 통해 난생 처음으로 알게 된 오케스트라의 이름이 '만토바니 오케스트라'의 만토바니 였다.
  당시 만토바니는 40대 중반으로 '몬티'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던, 이른바 '무드'음악의 제일인자였는데, 나 개인에게 있어서는 음악 체험의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의 계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전까지도 나는 그가 스테픈 손드하임의 히트송을 연주한 'Send in the clowns'를 들으면서 '가공할 노인'이라고 혀를 차고 있었으니, 확실히 만토바니는 시간을 초월한 존재로 살아 있었다.
   그러나 지난 '80년 3월 30일, 외신은 만토바니의 부음을 전해왔다. 지난 40년간 특유의 부드러운 선율을 들려 주던 음악 지휘자로 수 억의 음악 팬들을 사로잡아 온 그 만토바니, 아눈치오 파올로 만토바니가 수 년간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만토바니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미 역사가 되어 버린 그의 죽음은, 지난 '79년에 85세로 세상을 떠난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의 아서 피들러와 함께 경음악의 한 시대를 마감하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의 이름이 나타내는 것처럼 만토바니는 1905년 운하의 고도 베니스에서 출생한 이탈리아인이다.
   만토바니의 아버지는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 라 스칼라 좌에서 토스카니니, 생쟁, 마스카니 같은 대지휘자들의 콘서트 마스터로 활약한 바이올리니스트였다고 한다.
   따라서 어린 만토바니에게 최초의 바이올린 레슨을 해준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다. 탁월한 아버지의 지도는 만토바니의 나이 2세때부터 시작되었고, 그것이 70여 년에 걸치는 대가의 음악 경력의 스타트였다.
   만토바니의 나이 4세 때 그의 가족은 베니스에서 영국으로 이주하게 되었으나, 일류가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끊임없는 요구 밑에서 원하는 바에 따라 끌려다니는 어린 천재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만토바니가 영국 버밍햄에 있는 어느 레스토랑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주자로서의 첫 직업적인 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16세였다.
   고전의 전통 속에서 살고 있던 만토바니에게 레스토랑 오케스트라는 새로운 영역의 음악 정신을 일깨워 준 셈이었다고나 할까. 이 시절의 경험이 무드 음악의 시대를 개척한 대가 만토바니가 정신적으로나 음악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젊은 만토바니가 연주가로서 성공하게 된 지름길은 그가 런던의 메트로폴 호텔에서 연주 계약을 체결했을 때이다.
   그 뒤 1927년 그의 나이 불과 22세 때, 그는 매트로폴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지휘자가 되었고, 이때부터 '몬티 Monty'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런던의 많은 귀족들과 상류층 인사들의 사랑을 받는, 수준 높고 세련된 연주 스타일을 다져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심프슨과의 결혼으로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웨일스의 윈저 공은, 만토바니의 연주를 대단히 좋아해서 자주 그를 초대해 연주회를 열곤 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당시 그의 악단은 45명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는데, 그중 32명이 스트링 멤버라는 것을 보아 만토바니 오케스트라의 성격과 음악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분히 그의 악단은 귀족적인 예술성을 지니고 있었다. 더구나 당시의 만토바니 오케스트라의 현악 멤버 중에는 레지널드 킬비, 죠지 멜라크리노 같은 일류 연주가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나중에 독립,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만토바니와 함께 무드 음악의 한 장을 열게 된다.
   만토바니가 소위 '뉴 뮤직 New music' 을 개발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등장한 것은 1931년이었다.
   당시의 세계악단은 LP레코드의 대중적인 보급과 녹음 기술을 다채롭게 활용해서, 이른바 대중음악에 새로운 테크닉을 구하려는 움직임으로 술렁이고 있는 형편이었다.
   LP레코드의 출현과 함께 녹음 재생의 음역이 확대되고 연주의 형태나 테크닉이 차츰 다양해짐으로써 새로운 세미 클래식, 새로운 무드 음악의 개발이 서둘러지던 무렵이니 만큼 45인조 편성 만토바니 오케스트라의 등장은 여러 모로 행운의 기회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LP레코드의 녹음기능을 계산에 넣은 획기적 편성과 현악 중심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충분히 고려한 만토바니 오케스트라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당시 영국의 프랭크 책스필드, 미국의 퍼시 페이스, 데이빗 로스, 빅터 영 등이 각기 특색있는 연주로 여러 가지 다양한 무드음악의 패턴을 만들어 내고 있었지만, 만토바니가 대중취향과 클라식한 기호를 교묘히 혼합하여 45인조 현악단의 달콤하고 화려한 톤으로 연주할 때 팬들은 열광해 마지 않았다.


   만토바니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만든 것은 뭐니뭐니 해도 1951년에 녹음한 '샤르메느charmaine'의 대히트였다. 이 곡에서 그는 '캐스케이딩 cascading' 효과를 교묘히 구사하여 한층 매력 있는 음악을 만들어 낸 것이다.


   캐스케이딩이란 말은 '폭포와 같다'는 말인데, 이 기법은 바이올린군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고, 연주하는 도중에 음을 차례 차례 계단식으로 겹쳐서 점차 하모니를 두텁게 함으로써 마치 폭포가 흘러 떨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는 주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토바니 오케스트라의 현악기진은 '노래하는 바이올린'이니 '캐스케이딩 스트링스'니 하는 별명으로불렸고, 나아가서는 이 악단의 상표처럼 되었다.


    만토바니로 상징되는 1950년대의 무드 음악은 여기서 새로운 시대로 들어갔다. 처음부터 만토바니는 대중을 가장 잘 이해한 다양한 편곡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데 기막힌 요령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대중적인 오페란 서곡, 짧은 교향조곡, 오페라 아리아, 왈츠에서 탱고, 영화음악 심지어 팝송에 이르기까지 흥겨운 경음악과 클라식 작품을 잘 섞어, 그 특유의 매끄럽고 심포닉한 사운드로 연주해냄으로씨 다른 오케스트라가 다투어 모방하는 패턴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대중 감각에 민감했던 만토바니의 음악적 센스와 재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오케스트라는 결국 '지휘자의 악기'인 셈이다. 만토바니가 음악을 연주할 때면, 각 파트의 악기는 마치 다이아몬드와 같은 혼합된 광채를 모아서 무지개 빛과 같은 찬란한 음향을 발한다. 이런 연주효과는 마치 프리즘 현상처럼 나타난다. 그 음향은 오늘날 소위 프렌치 팝스의 여러 오케스트라가 전적으로 기대고 있는 에코 머쉰의 기계적 효과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만토바니 오케스트라가 들려 주는 소리는 팽팽하면서도 부드럽고, 단비처럼 매끈하면서도 투명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 일찌기 만토바니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원래 바이올리니스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악기 주자들이 요구하는 바를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난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도 오랫동안 연주했기 패문에 오케스트라 특히 현악 파트의 음향적 효과나 테크닉을 염두에 두고 지휘를 한다. 난 결코 단원들에게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는다.


   저 유명한 현악기군의 독특하고 감미롭고 현란한 소리는 이른바 대중을 염두에 둔 만토바니의 음악적 이상을 청각적으로 완전무결하게 실현시켜 주는 더할 나위 없는 음향이었다.


   만토바니는 그렇게 해서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독일 ·남아프리카에서 미국 그리고 일본에 이르기까지 전세계를 누비는 연주여행에 올라, 가는 곳마다 청중들과 비평가들로부터 절찬을 받았고, 그의 레코드는 미국 내에서만도 2천만 장이 넘게 팔려 나갔다. 한때 시카고 주재 영국 공사가 만토바니를 가리켜 '영국 제1의 대사'라고 말한 것처럼, 그가 순회연주에서 심은 외교의 성과는 대단한 것으로 평가된다.


   1964년 4월 만토바니는 런던 페스티발 홀에서 데카 레코드의 회장 에드워드 루이스경으로부터 다이아몬드로 M자를 새긴 아름다운 지휘봉을 증정받았다. 이는 만토바니가 데카 레코드와 25년 동안 계약관계를 맺은 가운데 실로 눈부신 음악활동을 했고, 영국의 음악사에 길이 남을 황금의 25년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만토바니는 녹음게약 35주년을 기념한 1964년 이래 최근까지 줄곧 데카 레코드에 적을 두고 있었으니, 그와 데카와의 관계는 40년 이상 유지되어 온 셈이다.


   만토바니의 활동은 리듬과 템포가 빠른 음악이 환영을 받게 된 ' 70년대에 접어들면서 다소 주춤해진 감이 있었으나, 지난 1975년 그의 나이 일흔 살 노경에 내놓은 앨범 'The greatest gift is love' 에서는 젊은 층에 어필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세련된 감각과 열정이 느껴진다.


   이 앨범에서 그가 노구를 이끌면서 연주한 '센드 인 더 클라운즈' · '디 엔터테이너 The entertainer'를 들을 때는 그가 음악의 영감을 마지막 촛불의 불꽃처럼 태운 고별의 인사로만 들려지는 것 같아서 착잡한 심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폴 모리아, 프랑크 푸르셀, 카라벨리, 레이몽 르페브르‥‥‥ 경음악의 페스티발을 위해서 천재나 작품이 부족하다고 걱정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오늘날 프렌치 사운드는 이미 프랑스를 초월하여 '세계의 음악'으로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만의 느낌일까? 너무나도 말초적이고 직선적이고 기계적인 프렌치 사운드는 오히려 만토바니 오케스트라의 향수를 부른다.


   그는 오랜 연주생활 동안 심지어 리듬 음악의 '70년대에도, 그 특유의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한 부드러운 연주기법을 바꾸지 않았다. '유행이 어떤 것이든, 멋지게 연주된 아름다운 선율은 어느때고 감상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애를 통해 일관된 음악철학 이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확고한 지성과 정서의 지반 위에 뿌리박고 있었기에 만토바니의 음악과 에스프리는 아마도 오래 오래도록 우리들의 마음을 붙잡아 매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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