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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여인 마르타 세베스첸의 목소리

 

에 길을 잃다

 


  집시 음악을 찾아 유럽의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그렇지만 집시 음악의 정수가 존재하는 지역을 단번에 발견하리라는 욕심은 버리기 로 하자. 혹시 도중에 잠시 길을 잃더라도 이곳에 존재하는 다양한 민속 음악들을 되도록 많이, 그리고 여유 있게 감상하기로 마음먹고 여행해보기로하자.

스페인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등 서부 유럽을 지나면 드넓은 평야지대가 전개된다. 농경문화가 오랫동안 발전된 곳이니 이 나라(또는 지역)들에도 민속음악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이곳에 위치한 나라들은 선진공업국이 된 지 오래고,따라서 현재는 월드 뮤직의 생산지보다는 소비지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니 이곳의 음악들은 기차를 타고 갈 때 차창 밖으로 지나쳐 가는 바깥 풍경처럼 놓아두기로 하자.
중부 유럽을 지나서 동남부로 향하다보면, 예를 들어 베를린을 지나 프라하를 거치고 빈에 접어들면 지리적 고도가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왈츠, 폴카, 마주르카, 쇼티세(schottische) 등의 무곡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이런 음악들도 서양음악사에 등장하는 음악이고 클래식 음악에 통합된 음악이므로 이 책의 대상인 월드 뮤직이라는 범주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니 진품의 월드 뮤직을 찾기 위해서는 남동쪽으로계속 발걸음을 옮겨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도착한 곳은 헝가리 대평원이고 여기 잠시 머물까 한다. 그 이유는 헝가리가 집시 문화의 전통이 강하다는 말을 분명히 어딘가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어디서 이런 말을 들었는지는 그리 기억이 생생하지 않다. 그래서 '과연 헝가리 음악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생각의 끝에는 헝가리와 관련된 세 부류의 서로 다른 음악이 떠오른다.
히나는 고전음악에서 헝가리를 주제로 한 음악이다. 대표적인 음악은 프란츠 리스트가 피아노 독주용으로 작곡한 (헝가리 광시곡)일 것이다.
이 곡은 피아노를 배우면서 손가락 훈련을 한 기억이 있는데, 작품으로 제대로 감상한 일은 별로 없다. 지금 와서 확인하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18세기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와 함께 이른바 합스부르크 왕조 아래서 하나의 제국을 형성했다. 서양음악사 교과서류의 책을 보면 "리스트는 소년 시절을 헝가리에서 자랐고, 그때 집시들이 켜는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헝가리 민속음악을 배우고 몸에 익혔다"는 말이 나온다. 아마도 이 때문에 헝가리 음악은 광시곡(狂詩曲)이고, 광시곡은 집시음악과 연관되고, 따라서 헝가리 음악은 집시 음악의 영향이 강하다는 고정관념이 생겨버린 모양이다. 실제로 '집시 바이올린'은 마치 하나의 장르처럼 인식 되고 있다. 스페인의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의 바이올린곡으로 유명한 <Zigeunerweisen>도 독일어로 '집시의 멜로디'라는 뜻이며 "사라사테가 부다페스트에 여행을 갔을 때 그곳의 집시 음악을 듣고 작곡했다"는 것도 교과서에 나오는 설명이다.
두 번째는 헝가리의 팝 음악인데, 1980년대 초 뉴턴 패밀리Newton Family라는 그룹이 부른 <Smile Again>이라는 팝송이었다. 그 시절 라디오에서 줄기차게 흘러나왔으므로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혼성 8인조 그룹으로 기억되는 이들이 헝가리 출신이라는 사실은 매우 뜻밖이었다. 영어 이름을 가지고 영어 가사로 노래하는 음악도 헝가리 음악일까. 나아가 공산국가에 팝 음악이 존재한다는 점도 의아했고, 팝 음악의 본고장인 미국이나 영국에서 별달리 히트한 곡도 아닌데 한국 땅까지 찾아온 점도 의아했다. 그들에게서는 더 이상의 히트곡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의아함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음악은 '유로 팝'의 하나일 뿐 헝가리 음악도, 집시 음악도 아니므로 이들의 음악을 월드 뮤직으로 다룰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들보다 먼저 활동했지만 그 뒤에 한국에 전파된 오메가omega 같은 록 밴드의 음악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마지막. 헝가리에서 나온 음악 가운데 가장 월드 뮤직다운 음악은 비교적 최근 영화 <The English Patient>를 보다가 들었다. 마르타 세베스첸 Marta Sebestyen 이라는 여인이 부른 <Szerelem, Szerelem(사랑, 사랑)>이다. 뒤이어 이 곡이 수록된 음반 <The Prisoner's Song>을 찾을 수 있었다. 음반의 주인공은 그녀를 포함한 그룹 무지카시 Muzsikas 였다. 음반 표지에는 넓은 초원에 바이올린, 비올라,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있는 네 명의 남자 악사들과 한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음반표지에 나온 남자 악사들은 모두 콧수염을 하고 있고 세 명은 모자를 쓰고 있으며, 여자는 수수한 옷차림에 보자기를 머리에 둘러쓰고 있다. 앞면에는 악기를 연주하면서 걸어가고 있는 앞모습이, 뒷면에는 연주를 마친 뒤 악기를 들고 어딘 가로 떠나는 모습이 등장한다. 표지의 연녹색 색조는 음악의 질감과 너무 잘 어울렸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얼핏 들으면 정제되지 않고 투박해 보이지만 그러면서도 섬세하고 부드럽다. 앞의 두 부류의 헝가리(와 연관된) 음악과는 매우 달랐다 고전음악이라고 말하기에는 기층 민중의 삶에 뿌리박고 있는 듯하고, 대중음악이라고 하기에는 상업적으로 윤색된 느낌이 없다. 그런데 이들의 음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집시 음악과는 또 다르다. 이들의 뿌리가 어디인지 알아보려면 일단 부다페스트를 찾아기서 어떤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할 것이다.
헝가리 음악과 집시 음악의 인연과악연  
    
집시 오케스트라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면 집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집시 바이올린을 듣기는 어렵지 않다. 집시 바이올린이라는 용어는 마치 장르처럼 인식되어 20세기 중반 세계 각지의 유수한 경음악 악단(또는 팝스 오케스트라)들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그런데 이런 음악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려면 헝가리 음악의 소사(小史)를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헝가리의 지배적 민족은 마자르족이다. 이들은 중부 유럽의 맹주인 게르만족과 동부 유럽의 맹주인 슬라브족사이에 끼여 있고 그래서 헝가리는 종종 '문화적 섬(cultural island)'이라고 표현된다. 마자르족이 사용하는 언어가 인도유럽어족이 아니라 우랄어족에 속한다는 점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상식일 것이다.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한국과 넓게 보아 동일한 어족에 포함된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우랄어와 알타이어가 친족관계라는 주장은 아직 하나의 가설이지만, 유럽의 나라로서는 이례적으로 성(姓)을 앞에 쓰는 점에서 헝가리인들의 문화적 독자성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문화적 독자성을 가진 민족인 헝가리 민족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에 시달려왔다. 13제기에는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 제국이, 16세 기에는 오스만 투르크제국이 각각 헝가리를 침략했다. 헝가리의 위치가 유럽의 기독교 문명으로 향하는 길목이었으므로 방파제 같은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특히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는 150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그사이 헝가리는 국토가 셋으로 분열되었다. 서부 헝가리는 합스부르크왕가의 지배를 받는 키톨릭 문화권에 속했고, 중부 헝가리는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는 이슬람 문화권에 속했으며, 동부와 동남부(즉, 트란실바니아)는 개신교 문화권에 속했다. 뒤에 보듯 1918년 이후에는 루마니아 영토가 되어버린 트란실바니아가 '진정한 헝가리 문화의 산실'로 여겨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헝가리의 문화가유럽의 문화에 연계(또는 종속)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에 오스만 투르크가 물러나고 합스부르크 왕조 치하에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하나의 제국을 형성하면서부터다. 오늘날 우리가 고전음악이라고 부르는 근대 유럽 음악의 특징이 유입되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다. 이런 문화적 교환의 결과 18 ~19세기 헝가리에서 탄쟁한 악단 형태가 바로 집시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의 현악 앙상블이다. 앞서 말한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이나 브람의 <헝가리 무곡>등 헝가리를 대상으로 한 고전음악 작품도 이 시기의 산물이다.
즉,집시 오케스트라는 도회적 스타일로 형성된 음악이다. 두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콘트라베이스, 침발롬(cimbalom)이 집시 오케스트라의 필수적 편성으로 정착되었다(헝가리에서는 비올라를 콘트라(kontra)라고 부른다는 점에 잠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전통은 '피들의 나폴레옹' 이라고 불리면서 리스트를 감동시켰다는 18세기의 야노시 비하리 Janos Bihari에서 최근의 라카토시 가계, 특히 집시 바이올린의 신동으로 불렸던 로비 라카토시Roby Lakatos까지 계승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부다페스트의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연주하는 집시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듣고 불만스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음반으로 듣는 경우에도 집시 오케스트라의 음반은 민중의 삶에 뿌리박은 느낌, 이른바 '루치(rootsy)'한 느낌은 적고, 최악의 경우 고전음악과 민속음악의 단점만을 결합해놓은 듯하다. 이는 아마도 2차 대전 이후 헝가리가 소비에트 블록에 편입되면서 더욱 심화된 현상일 것이다. 그 결과 외국인들은 집시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헝가리 음악, 적어도 헝가리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여겼지만, 정작 헝가리인들은 진정한 헝가리 음악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헝가리 음악은 어떤 것일까.

      '진정한 헝가리 음악과 탄카즈

벨라 바르토크 Bela Bartok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자국의 민속음악이 외부에서 받은 영향을 나타내는 징표라고 말한다면 우리의 품격을 너무 낮추는 일일까. 하지만 어떠한 언어나 음악이든 외국의 영향 없이 존재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여기서 바르토크가 말한 '외부'란 다름아닌 집시일 것이다. 바르토크로서는 헝가리 음악이 집시 음악의 압도적 영향을받아 형성된 것에서 자괴감을 느꼈던 것같다.
하지만 바르토크는 이런 문제의식을 토대로 진정한 헝가리 음악을 찾아나섰고 그 결과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벨라 바르토크와 졸탄 코다이 zoltan kodaly 등은 진정한 헝가리 음악을 '농민 음악(Peasant music)'에서 찾았다. 이들은 당시 에디슨이 갓 발명한 축음기를 들고 농촌의 민속음악을 채보하려 다녔고, 작업의 결과를 자신들의 작품에 담았다. 그 결과 집시 오케스트라 같은 도회적 음악과 농촌의 민속음악이 대비되었고, 후자가 진정한 헝가리 음악으로 여겨졌다.
여기서 바르토크와 코다이가 특별히 주목한 지역이 트란실바니아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트란실바니아라는 지역은 드라큘라 백작의 고향 정도로만 알려져 있을 것이다. 흡혈귀 드라클라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트란실바니아도 가상의 지역인 줄로 알고 있는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드라큘라가 실재의 인물이었던 것처럼 트란실바니아도 실재하는 지역이다. 이곳은 헝가리의 동쪽국경을 넘어 있는 루마니아의 서부(북서부)지역이다.
그렇다면 이상한 일이다. 루마니아는 라틴족의 계보에 속하는 왈라키안족이 주류를 이루는 나라인데, 왜 진정한 헝가리 음악을 이 지역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일까.그건 다름 아니라 1차 대전이 끝난 1918년까지는 이 지역이 헝가리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1차 대전에서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와 운명을 같이했으므로 패전국이 되어 이 지역을 루마니아에 내주었고, 그 결과 이곳의 헝가리계 주민들은 소수민족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지역은 지금도 양국의 역사학계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헝가리 학자들은 '원래 이 지역은 우리가 살고 있었는데 9세기경 루마니아인 (왈라키안족)이 이쪽으로 북상했다'고 주장하고, 루마니아 학자들은 "헝가리인(마자르족)이 이 지역을 점령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 뒤 몽골과 터키의 지배로 인해 문서가 소실되어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다고 한다
어쨌든 1차 대전 이후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루마니아에 상실한 데 이어 2차 대전 이후에는 소련의 영향권 아래 있는 '동구권 블록(eastenbloc)'에 포함되면서 바르토크와 코다이가 개척한 음악적 발전도 정체하게 되었다. 상황이 바뀐 것은 1970년대 이후 탄카즈(tanchaz)라는 이름의 음악적 운동이 태동하면서부터다. 탄카즈는 헝가리어로 '댄스 하우스' 라는 뜻인데, 농촌 마을에서 전통적으로 춤을 추던 공간을 말한다. 비유한다면 미국에서 컨트리 음악의 발전 과정을 설명할 때 반드시 언급하는 헛간(barn)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탄카즈는 부다페스트를 비롯한 도시에서도 융성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농민 음악의 전통을 잇는 것이었다. 탄카즈에서 태동한 음악은 국영 악단(앙상블)이 연주하는 민속음악에 대한 반작용으로 출발했고, 결국은 인위적으로 육성된 민속음악이 아닌 현실의 삶에 뿌리를 둔 민속음악을 대표하게 되었다.
탄카즈 씬(scene) 출신의 대표적 음악인이 바로 마르타 세베스첸과 무지카시다 게다가 세베스첸의 어머니는 코다이의 제자였다. 그러니 무지카시가 바르토크의 작품을 연주한 <The Bartok Album>을 발표한 사실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이 댄스홀에서 민속음악을 연주하는 그룹에 그치지 않고 국제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음악적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즉, 탄카즈에서 연주하는 그룹들 대부분은 정식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연주하지만, 마르타 세베스첸이나 무지카시 같은경우는 공연장과 탄카즈를 번갈아가면서 연주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마르타 세베스첸과 무지카시는-앞장에서 본 치프턴스가 그랬듯-무도장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품위 있는 공연장으로 옮겨 놓은 존재다. 그러니 <The English Patient>에 그녀의 노래(와 무지카시의 연주)가 수록되기 전부터 그녀의 영적노래를 '발견'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도 당연하다. 그 중 하나는 프랑스의,·일렉트로니카 듀오 딥 포리스트 Deep Forest인데, 이들의 1995년 작품이자 그래미상 수상작인 <Boheme>에 수록된 <Marta's Song>에서 마르타 세베스첸의 샘플링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탄카즈는 트란실바니아에 뿌리를 둔 헝가리의 농민 음악을추구했고 실제로 많은 탄카즈 음알인들은 트란실바니아를 오가면서 연주 활동을 전개했다. 그렇지만 정작 헝가리 내에서는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농촌의 민속음악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찾는 진정한 집시 음악은 아직 오리무중인 셈이다.

     집시의 진정한 민속음악
이쯤에서 헝가리 음악문화의 전반적 특징에 대해 정리해보자. 탄카즈를 포함하여 헝가지의 모든 음악은 집시 음악과 맺는 관계를 통해 정의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집시 오케스트라가 집시 음악을 영유하고 '착취'한 음악이라면, 탄카즈는 제도화되고 정형화된 집시 오케스트라에서 탈피'하려고 발생한 음악이다. 물론 탄카즈처럼 집시 음악이 '아닌' 음악도 악기 편성에서 바이올린과 침발롬을 사용하는 등 집시 음악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칼만 발로흐 Kalman Balogh 같은 저명한 집시 연주인들 역시 탄카즈 음악인들과 빈번히 교류하고 협연하고 있다.
역으로 말하면 집시 오케스트라도, 탄카즈도 진정한 집시 음악은 아니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진정한 집시 음악은 도대체 어디에 가서 찾아야 하는가. 진정한 집시 음악을 찾으려면 동유럽의 농촌으로 가야 한다. 동유럽의 농촌에서는 왁자지껄한 축제가 자주 열리는데 그 대부분은 결혼식과 장례식이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은 세상의 모든 곳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의식이지만, 동유럽 농촌의 경우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가 의식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주관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어떤 경우에는 텐트를 치고 며칠 동안 지속되는 의식도 있을 정도다.
즉, 집시들의 삶에 뿌리박은 음악은 도시의 집시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농촌의 빌리지 밴드(Village band)들이 연주하는음악이다. 이들은 문자 그대로 '동네에서 연주하는 악대'이므로 거의 '투어'를 하지 않고 마을 공동체 성원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해주고 돈을 받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음악인들이다. 이들의 음악을 제대로 들으려면 헝가리 국경을 넘어 남동쪽으로 발길을 옮겨야 한다.
그래서 루마니아의 영토로 접어들어 트란실바니아 지방을 거쳐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 왈라키아 지방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집시의 빌리지 밴드들을 만날 수 있다. 밴드의 편성은 대체로 비슷하다. 바이올린, 비올라(콘트라), 콘트라베이스의 스트링 트리오가 기본이고 여기에 침발롬이 추가된다. 물론 마을에 따라 바이올린이나 비올라가 한두 대씩 추가 되기도한다. 그런데 남쪽으로 갈수록 음악이 거칠고 광적이 된다.
루마니아 왈라키아지방의 빌리지 밴드인 타라프 데 하이도우크스 Taraf Haidouks의 음악을 들어보면 무지카시의 단아하고 정갈한 음악과 달리 광적이고 거칠다. 악기에 대한 해석도 달라진다. 한 예로 콘트라베이스 주법의 경우 카르파티아 산맥 북쪽의 트란실바니아에서는 활로 켜는 주법, 이른바 보잉(bowing)이 일반적이지만 산맥 남쪽의 왈라키아에서는 손으로 뜯는 주법, 이른바 플러킹(Plucking)이 일반적이다. 같은 악기라고 하더라도 북쪽에서는 찰현(擦絃)악기인 반면, 남쪽에서는 발현(潑絃)악기인 셈이다.
또 한 가지 달라지는 점은 남동쪽으로 갈수록 동양의 느낌이 묻어난다는 점이다. 이는 남부가 북부에 비해 오랫동안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다는 역사를 떠올린다면 자연스럽다. 이곳의 밴드 이름 앞에는 타라프라는 단어가 붙는데(예를 들어 '이 마을의 타라프'라는 식이다),타라프라는 단어 자체가 터키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헝가리의 남서쪽으로 방향을 돌려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된다. 국경을 넘기 전부터 헝가리 남부에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영향이 강하다.
이곳 출신의 부이치치Vujicsics라는 그룹이 마르타 세베스첸과 함께 작업한 음반의 제목이 <Serbian Music from Southern Hungary>(1989)라는 점에 주목해보자. 저명한 음악학자의 이름을 따서 그룹 이름을 지은 이들은 남부 헝가리의 세르비아인 공동체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헝가리 에서 출발하여 남동부로 가든 남서부로 가든 음악이 더욱 거칠고 동양적이 된다. '거칠고 동양적'이라는 말은 '발칸'이라는 말로 축약할 수 있을 것이다.

   발칸반도를 향하여

   발칸 반도, 문화적 용광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발칸 반도에 위치한 나라들의 이름이다. 이들 가운데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으로 연방을 형성하고 있고, 보스니아와 헤르페고비나도 하나의 나라를 형성하고 있지만 사이가 원만하지는 않다. 이 지역의 지리나 역사에 관해 시험이라도 치러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곤욕을 치를 정도로 많은 나라들이 도열해  있다.
알바니아를 제외하고 위에 열거한 나라들은 1918년 1차 제계대전이 끝난 후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의 연방으로 나름대로 대국을 형성한 바 있다. 2차세계대전 후에는 티토Tito의 지휘 아래 게릴라전을 벌여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뒤 시장 사회주의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만들어서 옛 소련의 영향권 아래 있던 동유럽의 여타 나라들과도 상이한 체제를 실험한 나라이기도 하다 남슬라브 연방' 이라는 뜻의 유고슬라비아라는 말에서 이들의 자긍심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소련이 북슬라브 연방이라면, 우리는 남슬라브 연방이다' 라는 셈이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발칸 반도라는 지명에서 연상되는 단어는 음악이나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20제기의 마지막 10년인 1990년대에 이 곳은 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잔인하고 난폭한 사건이 발생한 곳' 이라는 오명을 가지게 되었다. 인종 청소(ethnic cleansing)라는 입에 담기도 끔찍한 사건이 발생해서 과연 인간의 본성 중에 저런 부분이 있을까'라는 심각한 질문을 다시 한번 제기했다. 오죽하면 이곳을 인간 체스판(human chessboard)이라고 지칭하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역사를 추적해보면 이곳의 심란한 현실의 원인은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14세기 이래 이 지역의 동남부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토의 일부였고,서부는 신성 로마제국, 뒤를 이어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였다. 그래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카톨릭, 세르비아와 마케도니아는 정교, 보스니아와 알바니아는 이슬람을 각각 신봉하고 있다. 이 글 맨 앞에 열거한 나라들의 순서가 '북서부에서 동남부 순' 이라는 사실을 알면 이런 종교적 차이에 따른 문화적 차이의 판도를 머리에 그려볼 수 있을것이다.
문제는 이런 종교적·문화적 차이가 칼로 무 자르듯 지역별로 구획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게다가 터키, 헝가리, 집시 등의 소수민족까지 겹치면 이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한 예로 집시의 경우 유럽 전체에 거주하는 집시의 절반 가까운 수가 발칸 반도에 존재한다. 이 지역의 역사가 피로 얼룩진 이유이자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붕괴된 이유가 바로 이런 문화적 다양성이다.
그런데 아이러니가 있다. 한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버린 민족적 다양성으로 인해 이곳의 음악은 매우 풍부해졌으니 말이다. 이곳은 다양한 민족들의 문화가 뒤섞이는 곳이라서 이른바 '문화적 용광로'라는 말에 가장 부합하는 곳이다. 비록 이곳 사람들은 음악적으로 풍부하지 않아도 좋으니 민족간의 상쟁이나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 나라들 가운데서도 민족 구성이 가장 복잡한, 그래서 음악적인 유산이 가장 풍부한 나라는 보스니아일 것이다. 이곳의 수도 사라예보(Sarajevo)
로 가보자.

     사라예보의 슬픈노래들

사라예보에 대한 한국인의 기억은 대체로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이에리사와 정현숙을 주축으로 한 한국 여자탁구텀이 무시무시한 마녀
같은 중공(中共) 팀을 꺽고 한국 구기 역사상 최초로 세계를 제패한 곳' 이고, 다른 하나 '제1차 대전을 촉발한 총성이 맨 처음 울린 곳' 이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붕괴 이후 가장 첨예한 내전, 이른바 보스니아 내전이 발발한 곳도 이곳이다.
앞에서 보스니아는 기본적으로 이슬람을 신봉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곳은 서구의 카톨릭, 동구의 정교, 그리고 이슬람 등 3대 문화권이 뒤섞여 있다. 용광로 가운데서 가장 불길이 센 지역이라고 할수 있는데, 그래서 이곳의 음악은 문자 그대로 멀티에쓰닉(multiethnic)하다.
500만 명의 인구 가운데 300만 명이 무슬림이지만 각 민족별로 거주지역이 구분된 것은 아니라서 개별 민족의 음악적 정체성이 명확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보스니아인이 다수를 이루는 곳에서는 '소수민족'인 세르비아인도 보스니아인 특유의 바이올린이 낑낑거리는 음악을 연주하고, 세르비아인이 다수를 이루는 곳에서는 소수민족 인 보스니아인도 세르비아인 특유의 관악기가 뿜뿜거리는 음악을 연주하는 식이다.
현재의 보스니아인의 정체성에 가장 알맞은 음악은 세브달린케 (sevdalinke)라고 불리는 음악일 것이다 번역하면 '사랑 노래'라는 뜻 인데 어원은 터키어로 사랑을 뜻하는 세브다(sevda)라고 한다. 물론 어의전성(語義轉成)이 발생해서 사랑이라는 뜻보다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망'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보스니아 노래 가운데 멜로디가 왠지 구성지고 처량하게 들린다면 세브달린케일 확률이 높다. 멜로디에 이런저런 장식이 많고 리듬이 정형화된 패턴을갖지 않는다는 점도 특이하다. 게다가 동양인인 우리가 듣기에 왠지 친숙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터키 문화의 영향을 받아 동양 음계의 특징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즈(saz)라는 현악기를 사용하는 점도 터키 음악의 영향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예다.
세브달린케가 대중음악에 가깝다면 드리나 계곡의 농촌지역에 이즈보르나 보산스카 무지카(izvorna bosanska muzika)라고 불리는 음악은  '루츠 음악'에 가깝다. '이즈보르나'라는 단어는 영어의 'original'이라는 단어에 해당한다. 보스니아 음악의 뿌리를 찾는다면 이 음악이 가장 알맞을것이다. 사즈와 비슷한 사르기야(sargija), 바이올린, 아코디언 등으로 연주하는 이 음악은 곡물의 씨를 뿌리거나 수확하는 등 농번기에  맞추어 연주되었는데, 요즘은 동네 술집에서 토요일 밤마다 열리는 춤 파티에서 연주되고 있다. 보통 두 개의 성부가 화음에 맞추어 노래 부르는데 유럽 음악의 관점에서 볼 때 불협화음인지 아닌지가 묘하다. 6인조 그룹인 칼레시스키 즈부치Kalesijski zvuci의 <Bosnian Breakdown>'을 들으면 대충 어떤 음악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보스니아 내전 직전에 발표된 음반인데 '보스니아의 붕괴'라는 제목이 참 얄궂기만 하다
한편 두 음악 사이의 어딘가에 노보콤폴노바나 나로드나 무지카 (novokomponovana narodna muzika)라는 음악이 존재한다. 알파벳 표기를 유심히 보면서 어근을 확인하면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 있는데  '새로 작곡된 민중음악' 이라는 뜻이다. 과거의 민속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타일의 음악으로 이곳의 카페나 바에 가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시 밴드가 있다. 이곳의 집시 밴드는 브라스 밴드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현악기와 침발롬이 중심인 헝가리나 루마니아의 집시 오케스트라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쿵짝거리는 리듬 위에서 높은 볼륨으로 관악기를 불어대는 집시 악단의 음악에 동양적 느낌이 강한 것은 이 지역의 역사를 고려하면 자연스럽다. 실제로 브라스 밴드는 19세기경 터키의 군악대를 모방해서 형성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브라스 밴드, 즉 집시 관악대는 보스니아뿐만 아니라 유고슬라비아의 다른 지역, 특히 마케도니아와 알바니아에도 널리 퍼져 있다. 물론 앞서 말했듯 이들의 음악을 현장에서 직접 들어보기는 힘들다. 그 대신 현대 대중문화의 꽃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곳의 풍광과 더불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이런 영화음악을 만들어낸 대표적 인물 역시 보스니아 출신인데 그외 이름은 고란 브레고비치 Goran Bregovic 다.
    고란 브레고비치:코스모폴리탄 집시 광대 악단의 지휘자
에미르 쿠스투리차 Emir Kusturica 영화의 장르는 '마술적 현실주의 (magic realism)'라고 불린다. 마술과 현실이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 의아하지만 영화를 보면 이런 의아함이 풀린다. 단지 영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음악도 마찬가지다. 쿠스투리차의 영화들, 특히 <집시의 시간>이나 (언더그라운드>를 본 사람이라면 독특한 사운드트랙에 대한 인상이 오래 남았을 것이다. 음악은 마치 마법의 주문을 거는 것 같으면서도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맡은 인물이 바로 고란 브레고비치다. 보스니아 내전이 발발한 후 전쟁을 피해 파리에 거처를 정했지만 그 전까지 태어나고 활동한 곳은 보스니아였다. 영화음악에 손대기 전 그의 경력에 대해서는 '록 밴드의 리더'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록음악이 번성했다는 이야기도 다루고 싶지만 여기가 적절한 자리는 아니므로 생략하자. 또한 이 지역에서는 이른바 '카바레 팝(cavare pop)' 이라는 스타일이 대중음악의 중요한 흐름인데, 이 점도 똑같은 이유로 생략하겠다. 단지 내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유고슬라비아에서도 록 음악이 번성했다는 사실을 확인해두는 정도 로 그치자.
브레고비치의 표현에 따르면 옛 유고슬과비아에서 록 음악은 '감옥에 갈 위험 없이 불만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은 그는 비옐로 두그메 Bijelo Dugme(영어로 white button'이 뜻)'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1974년 데뷔 음반을 발표한 비옐로 두그메는 이후 여러 장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15년 동안 유고슬과비아 최고의 밴드로 군림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영미의 록음악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발칸 반도의 민속음악을 록 음악에 적절히 가미하는 실험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다.
"10대의 우장으로 살아가기 지겨워서" 1988년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집시의 시간>'에서 영화음악을 맡은 것이 고란 브레고비치의 또 한 번 의 기회였다. 이후 그는 록 밴드 활동을 접어두고 영화 사운드트랙을 주된 작업으로 삼았다. <집시의 시간>의 메인 테마에서 술 취한 듯 비틀거리는 리듬이 장엄한 곡조와 결합되는 것처럼 극단적인 것들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 그의 재능이다. 발칸지역의 민속음악이 전자 음향과 결합되는것이나 비트가 '모던(현대적)'하고 '웨스턴'하게 전개될 때 멜로디는 '에쓰닉(토속적)'하고 '오리엔탈'한것도 또 하나의 공식이다. 이처럼 브레고비치는 보스니아의 음악적 뿌리에만 집착하지 않고 다양한 방향으로 음악적 탐사를 전개했는데, 어쩌면 이런 다양성의 추구야말로 보스니아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브레고비치의 어머니가 세르비아계이고 아버지가 크로아티아계인데, 막상 그가 태어난 곳은 (보스니아의) 사라 예보이니 그는 가히 '내추럴 본 멀티에쓰닉 (natural-born multiethnic)' 인 셈이다.
고란브레고비치의 공연을 보면 베오그라드의 소규모 오케스트라가, 다른 한편에는 불가리아 합창단이, 중앙 뒤편에는 '웨딩 앤 퓨너럴 밴드 Wedding & Funeral Band)'라고 불리는 브라스 밴드가 각각 자리를 잡고 있다. 중앙에는 퍼커션 연주자가 서 있고 브레고비치 본인은 전기 기타를 연주한다. 여기서 볼 수 있듯 그가 자신의 음악 용광로에 녹여버리는 음악들은 바르토크의 음악을 비롯해 집시, 터키, 폴란드, 불가리아 등 가까운 지역의 음악은 물론이고 록, 재즈, 탱고, 모르나(morna)같이 동유럽의 음악적 전통과는 거리가 먼 음악까지를 망라한다 한 평자의 표현처럼 그는 '코스모폴리탄집시(cosmopolitan gypsy)'다. 비록 그가 집시 혈통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집시의 시간>은 마케도니아의 한 집시 공동체인 슈토 오리자리 (Shuto Orizari)에서 촬영되었다. 히트곡 <Ederlezi>를 포함하여 마케도니아와 알바니아의 집시들을 통해 보존된 전통음악들이 영화에 사용되었고, 영화의 히트와 함께 국제적으로 전파되었다. 이 음악이 집시 음악 의 가장 현대화된 버전이고 우리가 찾으려고 했던 음악에 가장 가까운 음악이다. (언더그라운드)의 사운드트랙을 들으면 이런 판단이 더욱 굳 어질 것이다. '"
한편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1999년 작품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에는 고란 브레고비치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는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 No Smoking Orchesoa'가 음악을 맡았고, 영화 사운드트랙을 작업한 뒤에는 정규 앨범 <Unza Unza Time>을 발표했다. 여기서 에미르쿠스투리차는 밴드의 일원이 되어 직접 기타를 연주했다. 브레고비치가 자신의 공연에서 쿠스투리차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곡들을 연주한 것에 대해 쿠스투리차가 "왜 영화에 사용한 곡을 별도의 용도로 사용하는가"라는 불만을 터뜨렸다는 유쾌하지 않은 후문이 들려온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두 인물이 따로따로 만들어내는 음악은 여전히 흥미롭다. 보스니아의 비극적 상황에서 이런 예술이 나온다는 것은 여전히 아이러니하지만.....

비에라빌라, 체코의 집시 여인의 목소리
고란브레고비치의 음악을 듣거나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집시의 시간'이 글로벌타임'이 되고 있다는 착각이 생긴다. 한 예로 <언더그라운드>의 사운크트랙에는 <Ausencia>라는 슬픈 노래가 나온다. 노래를 부른 목소리의 주인공은 험한 세파를 헤치고 살아남은 여인일 것만같다. 이건 맞는 말이다. 맞다. 노래의 주인공은 쎄자리아 에보라 Cesaria Evora라는 이름의 월드 디바다. 그런데 혹시 그녀가 발칸 반도 출신의 집시 여인일까. 그건 틀린 말이다. 그녀의 국적은 동유럽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민족적 정체성도 집시와는 관계가 없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출신인지 궁금하겠지만 미루도록 하자.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이 곡은 쎄자리아 에보라가 아니라 비에라 빌라 Vera Bila가 불렀어도 어울렸을 것이다. 아마도 고란 브레고비치가 비에라 빌라를 찾지 못한 이유는 그녀가 쎄자리아 에보라보다 조금 늦게 스타덤에 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두 여인의 노래에는 공통점이 있어 보이는데, 실제로 BBC에서 월드 뮤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찰리 질렛 Chariie Gillett은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참고로 그는 한때 록 음악 평론가였고
<The Sound of the City>(Outerbridge & Dienstry, 1970)라는 중요한 저서를 남겼다).

     "악기들의 사운드는 기쁨에 넘치고 기분을 돋운다. 그렇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에라 빌라는 종종 후회스럽고 슬픈 투로 노래한다. 이는 종종 쎄자리아 에보라를 연상시킨다. 두여인은 특정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곡들을 전문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지닌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어떤 감정을느끼게 된다. "
  그런데 비에라 빌라는 누구인가. 비에라 빌라는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 출신의 디바이고 그녀야말로 집시 여인이다. 앞에서 체코는 그냥 지나쳐버렸고 따라서 체코의 음악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었으니 비에라 빌라를 소개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보자. 보헤미아 지방의 로키차니(Rokycany)에 위치한 조그만 집시 마을 출신인 비에라 빌라는 1996년 <Rom-pop> 이라는 음반을 통해 월드 디바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적잖은 월드 디바의 데뷔가 그렇듯 마흔이 넘은 나이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자신의 밴드와 더불어 비에라빌라& 칼레 vera Bila & Kale(영어로Vera White & Blacks라는뜻)라는 이름으로 외국과 국내에서 순회공연을 다니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앨범 제목에 나오는 단어 롬(Rom)이란 무엇일까. 다른 경우에는 로마(Roma)라고 쓰기도 한다. 다름 아니라 집시를 일컫는 용어다.
과거 제국의 이름이자 현재 이탈리아 수도의 이름과 혼동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비에라 빌라야말로 현존하는 집시 팝의 여왕인 셈이다.
스스로 자신들의 음악을 '롬 팝(Rom pop)' 이라고 부르듯 전통음악의 레퍼토리에만 집착하지는 않는다. 2001년에 발표된 세 번째 앨범
<Rovava>'에는 폴란드의 인기 가수 카야흐Kayah와 프랑스의 기타리스트 치코chico가 <Amen>이라는 곡에 참여하고 있다.
폴란드야 체코와 인접한 나라이므로 그렇다 치더라도 프랑스 국적을 가진 치코는 무슨 연줄로 이 음반에 참여하게 되었을까. 음악인으로서  치코에 관한 정보 가운데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은 어쩌면 중요하지 않다. 다름 아니라 그는 플라멩코 그룹 집시 킹스 Gipsy Kings의 전 멤버였기 때문이다. 비에라 빌라와 함께 연주한 곡에서도 플라멩코 기타 주법은 완연하다. 여기서 집시와 플라멩코와 스페인 사이의 관계의 실마리가 발견된 다. 쎄자리아 에보라의 국적 운운했던 이야기를 포함하여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다시 유럽 대륙의 서쪽 끝(정확히 말하면 남서쪽)으로 가보아야 할 것이다. 다름 아니라 이베리아 반도다. 여기서도 집시의 시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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