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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열창하는 모습

파두의 고향, 알파마

이 시리즈에서 소개하는 음악들이 '포르투갈'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새삼 지적하는 것은 지면 낭비다. 단지 이 점이 비단 가사의 언어가 포르투갈어라는 사실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지난 번에 모르나의 악기들로 열거했던 까바끼뉴, 비올라 등의 악기는 포르투갈의 악기기도 하다. 포르투갈? 유럽의 서쪽 끝에 위치한 길쭉한 나라다. 유럽인들은 포르투갈을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유럽의 최빈국으로 전락했지만, 한때는 스페인과 더불어 세계를 주름잡았던 나라고 따라서 포르투갈의 문화는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다. 그러면 정작 포르투갈 본토의 음악은 어떤 게 있을까.

포르투갈이라는 나라의 음악에 대해 물어보면 '파두'라는 단어가 나올 것이다. 파두의 역사에 대해서는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서는 간단히 몇 가지만 지적해 두자. 첫째로 파두는 '순수한' 포르투갈 문화의 산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파두의 고향인 리스본의 알파마(Alfama) 지역은 지지리 못사는 곳이다. 이곳에는 19세기 초 이래 브라질, 아프리카 등지에서 역이민해온 흑인과 혼혈인(krioulo)의 거주 지역이었다. 룬두(lundu) 혹은 룬둘룸(lundulum), 포파(Fofa) 등의 용어와 더불어 파두라는 말도 '기타 연주를 수반한 아프리카적 요소가 강한 댄스 음악'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물론 뒤에는 사정이 바뀌었다. 아프리카로부터 영향받은 리듬 위에 포르투갈의 시적 전통이 내용을, 브라질에서 역수입된 발라드 형식인 모디냐(modinha)가 형식을 공급하여 1920-30년 경에 오늘날의 파두의 원형이 정착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물론 이보다 훨씬 전인 19세기부터 파두의 존재가 확인된다. 특히 유명한 일화가 있다. 1836년경 한 귀족(물론 남자)이 바를 찾아가 마리아 쎄베라(Maria Severa)라는 파디스타(fadista)가 노래하는 것을 들은 뒤 그녀와 "격렬한 치정 사건"에 빠졌다는 기록이 전해져 오고 있다. 불행히도 사건의 기록만 남아 있고 음악의 기록은 없다. 검은 숄을 어깨에 걸치고, 술 취한 듯한 무대 매너로 노래부른 쎄베라는 많은 남자들을 사로잡았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져 온다. 오늘날까지도 여성 파디스타들이 검은 모자와 의상으로 무대에 오르고, 때로는 와인이나 꼬냑을 담은 유리잔을 손에 들고 노래부르는 것의 유래를 추측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사건은 마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탱고가 일으켰던 스캔들과 유사한 사회적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역설적으로 파두가 포르투갈 전역으로 대중화되게 만들어주었다.

꼬임브라... 그리고 사우다드(saudade)

사진설명: 꼬임브라 파두의 연주 장면
알파마 파두와는 다른 파두의 또하나의 갈래가 있다. 꼬임브라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른바 '꼬임브라 파두(Coimbra Fado)'다. 꼬임브라 파두는 "고도로 숙달되고 양식화된(highly rehearsed and stylized)" 형식이라고 표현된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 그것도 의과대학 중심으로 목적의식적으로 보존하고 재해석한 음악이므로, 형식이 세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사도 지성적이다. 꼬임브라 파두는 1920-30년 경 안또니우 메나누 박사(Dr. Antonio Menano)를 중심으로 '파디스따'와 '기따리스따'를 낳았고 레코딩도 남겼다. 이들 그룹은 파두의 한 갈래를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의 농촌 지역 -- 자료를 뒤져보니 베이라 바이샤(Beirra Baixa)와 알란떼쥬(Alantejo)같은 지역 -- 의 전승 민요를 발굴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말하자면 꼬임브라 파두는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파두가 현대적 대중음악으로 진행되는 것과는 다른 방향을 취하면서 '민중 예술'의 양식으로 다듬은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어떤 갈래든 파두는 고된 삶을 노래하면서도 자신의 운명에 대처해 나가기보다는 운명을 인정하는 음악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은 단조의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 그 정서는 싸우다드(saudade)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진정한 갈망'이라고 번역되는 이 단어는 가수나 연주자뿐만 아니라 청중의 태도까지도 결정하는 파두 특유의 정서다. 싸우다드가 "한국인의 '한(限)'의 정서와 유사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은 듯한데, 해석이야 각자의 자유지만 결론은 다음 인용문을 읽어본 뒤에 내려도 늦지 않을 듯하다. 한 미국인이 리스본의 파두 클럽의 공연을 본 감상기 중의 일부다.

"라이브 공연에서 청중의 행동은 매우 중요하고 청중에 대한 규칙은 가수에 대한 규칙만큼 엄격하다. 전형적인 리스본의 상황에서 시원찮은 연주를 끝까지 고통스럽게 참아내는 청중은 없고, 훌륭한 연주를 중단시키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나는 시끄러운 후원자(patron)가 쫓겨나는 것을 목격한 바 있고, 시원찮은 가수는 노래하는 중간에 그만두어야 하는 장면도 보았다 ...(중략)... 노래가 끝나면 박수갈채를 치거나, 발을 구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테이블을 두드리거나, 맥주를 쏟거나 모든 것이 허용된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포르투갈의 목소리"

지금으로부터 1년 여 전인 1999년 10월 6일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79살의 나이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포르투갈의 수상 안또니우 구떼레스(Antonio Guterres)는 3일간의 국장(國葬)을 선포했다. 한 나라의 통치자가 한 가수에 대해 '포르투갈의 목소리'라고 칭한 것은 단지 고인에 대한 예의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세상 어떤 나라에서도 '여가수'가 세상을 하직했을 때 '나라의 목소리'라는 칭호를 내린 경우는 없었으니까.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입지전적 성장과정에 대해서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알려져 있다. 1920년 알파마의 빈민촌에서 10남매 중의 하나로 태어났고, 한 살 때 집을 나간 어머니를 대신하여 할머니 밑에서 자라났고, 10대 시절에는 행상과 재봉사와 탱고 댄서를 전전하던 이야기 말이다. 19살 때 '밤무대'에 직업 가수로 데뷔하여 1년이 지나지 않아 스타가 되어 그녀가 나오는 날이면 매진을 기록한 일도 전해져 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녀가 데뷔한 클럽의 이름이 레띠루 다 쎄베라(Retiro da Severa)였는데, 쎄베라라는 이름이 '언젠가 한번 들어본 것'이라면 흥미롭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는 유럽이 2차 대전의 참화에 휩싸였던 1944년에는 브라질로 가서 파두를 국제적으로 전파시켰다. 코파카바나 카지노(Copacabana Casino)를 비롯한 남아메리카 각지의 바와 클럽에서 선풍을 불러일으킨 뒤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는 최초의 스튜디오 레코딩을 했다. 그녀는 정작 포르투갈에서는 1951년까지 레코딩을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매니저를 맡은 인물인 쥬제 드 멜루(Jose de Melo)가 '음반을 판매하면 청중들이 공연에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관점으로는 참 황당한 발상이지만 '라이브 공연'을 미덕으로 하는 '민중음악으로서의 파두' 특유의 이데올로기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쨌든 1955년 "Coimbra"는 국제적 히트곡이 되었고, 그 무렵 파리의 올렝피아 극장에서 가진 공연실황 음반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음반이다. 한국인에게 친숙할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Lagrima"와 "Barco Negro"도 이 무렵에 레코딩된 버전이다. 그녀가 성공한 비결은 도회적 분위기의 알파마 파두와 농촌 분위기의 꼬임브라 파두를 결합하면서, 단지 실패한 사랑에 대한 비가를 넘어서 아메리칸 소울처럼 영혼으로부터의 절규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 비틀스와 로큰롤 선풍이 불어닥치면서 파두 역시 유럽의 다른 나라의 '국민적-민중적 대중음악'(예를 들어 샹송, 칸초네)과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다. 파두는 청년들의 새로운 범세계적 취향과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가면서 인기도 시들어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만은 비교적 건재했다. 무려 170종의 앨범을 레코딩했고, 영화에도 출연했고, 세계 각지를 돌며 순회공연을 계속 가졌다. 1990년대에 은퇴하여 조용한 삶을 살아간 파두의 여왕은 1998년 리스본 엑스포에서 잠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로부터 1년 뒤 '포르투갈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파두의 현재와 미래

포르투갈 사람이 아니라면 파두의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월드 뮤직 평론가인 폴 버논(Paul Vernon)은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이 포르투갈의 여자였다면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로버트 존슨이 누구인지 모르는 21세기의 음악 팬들에게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파두는 그저 '오래된' 음악일 뿐일지도 모른다. 물론 '로버트 존슨을 모르고 에릭 클랩튼을 좋아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하긴 블루스의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정말 많을까?).

'월드 뮤직'으로 국제 시장에 등장하는 파두는 '리듬감이 없고 기타가 낑낑거리고 바이브레이션 강한 목소리로 부르는 청승맞은 노래'라는 인상을 준다. (1980년대 한국 문단의 용어를 사용하면) '핍진성'은 느낄 수 있지만, 악기편성과 편곡방법이 '고루하다'는 느낌을 준다. (앞에 본) 쎄자리아 에보라나 (뒤에 볼) 베빈다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그들의 음반이 파두의 고전적 편곡을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역설적 설명도 가능하다. '국지적 민중 음악(local folk music)'으로서 파두의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더라도 현대적 대중음악으로서 파두의 가치는 많이 절하되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현재 대중음악으로서의 파두는 팝 파두(pop fado) 혹은 투어리스트 파두(tourist fado)로 변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전자의 용어는 영미 팝의 형식이나 편곡과 결합되어 현대화된 스타일이라는 점을 지칭하고, 후자는 '관광객용' 음악으로 외국인이 들르는 고급 호텔이나 바에서 연주되고 있다는 점을 각각 지칭하고 있다. 미지아(Misia)나 둘쎄 뽄떼스(Dulce Pontes)같이 국제적 명성을 가진 파디스타들의 음악은 이렇게 상업화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파두가 하나의 '역사'가 되었고 앞으로 포르투갈의 새로운 음악적 시도들은 이런 역사 위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점이다. 결론은? 이번 호 앨범 리뷰에 소개하는 [The Rough Guide to the Music of Portugal]의 라이너 노트를 인용하면서 마무리하자. 파두와 포르투갈 음악은 "유럽의 음악 문화의 가장 거대한 기쁨"이지만 "종종 간과된" 음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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