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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조회 수 4026 추천 수 0 2005.09.05 17: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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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사람들의 평화로운 노래

꿈에도 그리운 발리의 천사들
    딩‥‥‥ 동‥‥‥
    딩딩 동동·.
    쇠붙이로 만든 보낭과 공이 묘한 소리를 낸다. 희미한 불빛 아래 가믈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사람들은 잔치를 위해 즐기려고 모인 것이 아니다. 이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을 위해, 신전에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는 것이다.
   늦은 밤이다. 마을의 몇 집에서 차와 떡을 가져다준다. 그 음식들은 생일을 맞은 집에서 마련한 것도 있고, 손님을 맞게 된 집에서 준비한 별식도 있다. 잠시 음악 소리가 멎는다.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나누는 농사 이야기, 가정의 혼사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어느 때는 마을의 공동 관심사를 상의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럴 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선뜻 결정을 내리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곳 사람들은 남과의 관계에서 이칼라스Ikalas(조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은 '사람을 해치는 악신은 앞으로 또는 뒤로만 갈 수 있을 뿐, 옆으로는 가지 못한다'라고 믿는다. 그래서 마을 입구나 신전에는 커다란 기둥이 세워져 있다. 옆으로 돌아갈수 없는 악신이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이곳 신전은 인도네시아 사람에게는 피난처이자 안식처이다. 나아가 가장 편안한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자정이 가까워 온다. 사람들은 이제 거의 집으로 돌아가고, 나이 많은 노인들만 남아 있다. 그리고 사연이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신전에서 춤을 추고 있다. 아직 신의 계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늦을수록 점점 춤은 진지해진다.

   이것은 바로 내가 발리의 우부드Ubud에서 직접 본 풍경들이다. 나는 이날부터 발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씩 꿈을 꾸게 되었다. 세상사가 복잡해지고 막무가내로 몰아붙이는 사람을 만난 날이면, 더욱 발리가 그리워진다.

   만약 누군가 내게 "지구상에서 낙원을 찾아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느 곳이라고 말하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인도네시아의 발리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인류학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과 민족 음악학을 연구하는 음악가들, 그리고 여행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발리는 먼저 기후가좋다. 발리에 가 보지 않은 사람들은 발리가 적도 지방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엄청나게 더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발리섬은 바다와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기후가 우리 나라의 여름 날씨 정도에 불과하다. 발리는 일년이 두 계절로 나누어진다. 우리 나라의 기후로 말하면 여름철은 비가 오는 계절이고, 걱울철은 건조한 기후가 계속되는 계절이다. 그러므로 겨울철에 발리섬을 찾는다면, 최상의 기후를 즐길 수 있다. 겨울철의 햇볕도 약간 따가움을 느낄 정도로 강하지만, 일단 그늘 밑으로 들어서면 상쾌해진다. 습기가 적기 때문인데, 그늘 아래에서 느끼는 기분은 마치 우리 나라의 가을 날씨처럼 쾌적하다.

   다음으로 행복한 인생관을 지닌 발리섬 사람을 들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은 거의가 힌두교 교도인데, 힌두교는 철저하게 윤회 사상을 믿는 종교이다. 다음은 힌두신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오, 초월자인 신 브라만이여        

     당신은 형제가 없도다
     당신은 온갖 모습을 창조했고
     당신은 그들을 나타나게 했으며
     끝으로 당신은 그들을 거두었나니
     당신의 생각으로 우리를 채우도다
     당신은 여인이며
     당신은 남정네라
     당신은 지팡이 짚고 휘청거리는 늙은이라
     당신은 모든 곳에 임하도다
     마야는 당신의 성스러운 반려이나니
     당신과 결혼했도다
     당신은 그녀의 주인이요, 그녀의 지배자라
     빨간 것,흰 것 그리고 검은 것이 그녀이나니        
     저마다의 빛깔은 구나guna(사람의 속성)이도다
     온갖 것이 그녀의 아들이나니
     강, 산, 꽃, 들 그리고 나무
     짐승, 새 그리고 사람아
     모든 것이 그녀와 같도다

     당신이여
     유체 안에 있는 마음인
     당신이 있으신 바를 잊고서
     마야와 결혼하노니
     그러나 다만 한 계절뿐이로다
     마침내 그녀로부터 떨어져 나와
     당신은 당신을 되찾도다

     당신이여,우주의 자궁이며 무덤인
     그리고 거처인 당신이여
     모든 미덕의 근원인
     모든 악의 파괴자인
     당신의 마음 한 가운데 자리하도다

     사람이 하늘을 휘어 감을 수 있나이까
     가죽 채찍처럼
     그가 그의 비참한 것을
     마무리 지을 수 있나이까
     당신을 알지 못하고서도


    윤회 사상이란 인과응보를 믿는 사상이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 사는 나의 현생은 전생의 업보에 따라 결정되며, 나의 후생 또한 현생에서의 삶의 질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는다. 이들은 정말 우매하리 만큼 윤회 사상을 철저히 믿고 있다. 만약 우리가 진실로 윤회 사상을 믿는다면 어찌 남을 해치기 위해 거짓말을 할 것이며, 어찌 쌀 한 톨이라도 남의 것을 탐내겠는가! 설사 내가 현생에서는 거지로 살고 있다 하더라도 후생을 위해, 깨끗한 영혼을 유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발리 사람들은 대부분이 가난하다. 그들은 힌두교 사원에 시주를 할 때는 모든 것을 아끼지 않지만, 대부분은 신발도 없이 맨발로 산다. 그러나 그들은 더없이 행복하다. 그들은 낮에는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저녁에는 일찍 들어와 저녁밥을 지어먹은 뒤, 모두 사원으로 모인다. 그리고 힌두신과 자신을 위해, 사원에 설치된 가물란 악기를 밤늦도록 두드려 댄다.
   우리 나라 사람 가운데 40대를 넘긴 사람들은 보릿고개를 몸소 경험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말 배고픈 설움이 어떤 것인지 절실하게 경험한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 나라는 최소한 배고픔은 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배고픔을 몰아낸 우리 나라 사람들은 지금 행복한가? 배고픔을 몰아낸 그 자리에 대신 불만과 갈등이 자리하게 되지 않았는가?
   발리는 자연 경관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면적으로 말하면 제주도의 3배 정도의 크기인데, 이 작은 섬에 해발고도 3,142m의 아궁산이 버티고 있다. 이산에는 화산도 있고, 화산으로 생긴 호수도 있으며, 호수 속에 자리한 섬도 있다. 북쪽의 바닷가에는 최상의 조건을 갖춘 해수욕장이 있다. 이 해수욕장의 야자수 아래에서 수영복만 입은 채 낮잠을 자거나 해변을 거니는 모습은, 그야말로 꿈 같은 정경으로 다가온다.
   내가 어떤 자리에서 발리에 대한 예찬론을 늘어놓자, 어떤 사람이 자기도 발리에 가 보았는데 별로 뚜렷하게 남는 인상이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발리의 어느 곳을 가 보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여행사의 단체 여행객으로 발리의 주도인 덴파사르에서 3일 동안 묵고 왔다고 대답했다.
   덴파사르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가 모두 지나는 곳 이기 때문에, 주말에는 특히 휴가를 나온 오스트레일리아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그리고 그 틈으로 자동차들이 뒤엉켜 다니고, 관광객들을 위해 엉성하게 연출된 민속 음악과 민속춤이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틸어 내기도 한다. 덴파사르에 거주하는 이른바 배웠다는 사람, 곧 근대 문명을 받아들여 개화한 사람들은 대개 힌두신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윤회 사상을 비웃으며,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인 생활을 살아 간다. 발리의 사람들은, 개화된 근대 문명 속에 사는 소수의 이기주의자들과, 깨끗한 영혼을 위해 힌두교를 철저히 믿으며 사는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로 철저하게 양분되어 있다.
   덴파사르에서 30㎞ 정도만 가면 우부드Ubud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앞에서 말했듯이, 나로 하여금 발리를 사랑하게 만든 곳이다. 우부드뿐 아니라 덴파사르를 벗어나기만 하면,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발리 사람을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다.
   내 여행 경험 가운데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겨준 곳이 바로 발리이다. 꿈 같은 이야기이지만 머리가 복잡하고 어수선할 때는 이것저것 다 때려치우고, 발리로 가서 순박한 농부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한다. 실제로 유럽의 유명한 예술가들이 이곳에 와서 작품 활동에 전념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발리에는 풍부한 전통 문화가 남아 있다. 인도에서 발생한 힌두교가 인도보다 더 완전하게 보존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전통 음악 오케스트라인 가믈란 연주와 와양(연극)은 일품으로 꼽힌다.

    가믈란은 청중을 의식하면서 연주하는 서양 음악과 달리, 철저하게 연주자를 위한 음악이다. 가물란 악기들은 대부분이 타악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악기 가운데 우리 나라의 징처럼 아무나 금방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있는가 하면, 고도의 기교가 필요한 레바브이나 셀렘풍 등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믈란 음악에 대한 예비 지식을 갖추지 않았더라도, 원한다면 초보자라도 당장에 합주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연주할 때는 음악을 배워서 이해한 정도에 따라, 자기에게 알맞은 수준의 악기를 연주하면 된다. 그들도 가믈란을 연주하다가 서로 자리를 옮겨, 악기를 바꿔가며 음악을 즐긴다. 그래서 사실 가믈란 연주장에서는 청중이 따로 없고, 모두가 연주자이자 청중이다.
   가믈란의 연주는 우리 나라의 농악을 연상케 한다. 농악을 배울 때는 특별한 교본이나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농악을 배우려면 먼저 소고라도 잡고, 농악 판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음악이 귀에 익숙해진 다음에, 점점 어려운 악기로 나아가면 된다. 이즈음 우리 나라 국악을 연주하는 모습이 많이 변해 무대에서 사물놀이나 농악을 연주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 농악은 무대 음악이 아니다. 또한 청중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철저하게 연주자 곧 농민들 자신을 위한 음악이다. 그리고 농악은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마을의 안녕을 빌기 위한 제사 의식으로서의 기능까지 한다.

   인도 음악의 멋은 다양한 리듬(딸라)과 오묘한 선법(라가)에 있다. 여기에 비해 발리의 가믈란 음악은 근본적으로 타악기 음악이다. '가믈란' 이라는 말은 망치를 뜻하는 발리어인 '가믈gamel'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가믈란은 곧 망치로 쳐서 소리를 내는 타악기 음악이라는 뜻이다.
   가믈란은 유럽 사람들이 흔히 'Gamelan'이라고 쓰고 '가멜란'이라고 읽는데,이것은 로마자로는 '으' 자를 쓸 수 없기 때문에,하는 수 없이 '멜' 이라고 쓴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는 현지어를 정확하게 쓸 수 있는 한글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가믈란이라고 표기하겠다.
    가믈란은 발리섬을 중심으로 자바, 수마트라, 말레이시아, 필리핀 남쪽 지방의 섬까지 폭넓게 퍼져 있다. 또한 이 지역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의 여러 대학교에서 열리는 연주회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다.
     가믈란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쉬우면서도 재미있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 나라에 피아노가 그렇게 많이 보급되어 있지만, 웬만한 노력을 들이지 않고는 피아노를 잘 친다는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 또한 우리나라의 가야금도 「아리랑」 가락 정도는 하루 저녁이면 배우기 때문에 입문은 쉬운 편에 속하지만, 이것도 역시 들어서 괴롭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려면 상당 기간의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믈란은 이 음악에 전혀 예비 지식이 없는사람이라도, 10분 정도의 설명을 듣게 되면 가물란 악단에 참여할 수 있다. 앞에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가물란은 기본적으로 합주 음악이기 때문에, 초보자는 쉬운 켐풀 Kempul이나 케농Kenong을 담당하고, 익숙한 사람은 사론Saron이나 겐더Gender를 맡는다. 아주 능숙한 사람은 켄당(북)을 담당한다.

   이런 합주의 성격은 우리 나라의 농악과 아주 비슷하다. 농악에서 꽹과리나 징을 혼자 쳐서는 아무 의미가 없듯이, 가믈란 음악도 함께 합주를 해야만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초보자도 함께 어울려 음악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의 대학교에서도 흔히 가믈란을 들을 수 있다. 이는 오랫동안 연습을 해야만 합주에 참여할 수 있는 유럽 음악과 달리, 연습을 많이 하지 않고도 합주를 즐길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가믈란 교실로 모여드는 것이다.

    가물란 음악은 아주 평화로운 음악이다. 우리 나라의 판소리나 산조에서 느껴지는 비탄이나 격정 같은 격렬한 느낌이 전혀 없다. 가믈란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발리 사람들의 고운 심성이나 생활 태도처럼, 마음이 한가롭고 평화로워진다.


    가물란 음악의 최대의 장점은 마을 사람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 공동체 의식을 함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양 음악을 공부하는 음악 학도들은 대체로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스타가 되기를 꿈꾼다. 그래서 그들은 합창단 단원이 되기보다는 성악가로서의 성공을 바라며, 관현악 악단의 단원이 되기보다는 독주자로서 출세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체로 서양 음악은 혼자서 연습하는 시간이 많다. 결국 음악 공부는 피나는 자기와의 싸움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음악인들은 이기적이기 쉽고, 잘 화합하지 못하며, 독선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물란 음악은 혼자서 연주를 할수도 없으려니와, 혼자서 하는 연주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가물란 악단에서는 누가 특별히 솔로를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전공 악기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한 사람의 연주자가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 그래서 틈틈이 악기를 서로 바꾸어가며 연주하기도한다. 이렇게 함께 연습하고 함께 연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이 싹트게 되고, 나아가 남과의 조화와 화합을 배우게 된다.

   발리 사람들의 생활은 아주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다. 대체로 날씨가 덥기 때문에 오전 7시 정도면 학교 수업이 시작되고, 오후 1시가 되면 학교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게 된다. 학교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해서, 오후 3시 정도면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낮잠을 한숨 자고 나서 저녁을 일찍 먹은 뒤, 마을 한복판에 있는 힌두교 사원으로 모여든다. 대체로 마을 한복판에는 넓은 공터와함께 힌두교 사원이 있다. 이 사원의 마당에 가믈란 악기가 비치되어 있다.
   발리 사람들이 연주하는 가믈란은 본질적으로 힌두신을 찬양하는 것으로서, 대개의 음악에는 무용이 따른다 사람들이 함께 가믈란을 연주하는 동안에, 돈 많은 부자는 동네 사람들에게 간단한 간식과 차를 대접한다 이렇게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에 마을 사람들은 함께 즐기고, 갈등을 대화로 해결한다.
   자연스레 마을의 지도급에 속하는 사람은 가믈란 악단에서도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 왜냐하면 힌두신에 대한 제사 의식은 대체로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고, 마을의 힌두교 사원은 마을의 공동 기금으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힌두교의 제사 의식을 맡아 관장하는 일과 가믈란 음악을 보존하고 지도하는 일은, 마을에서 지도자급에 속하는 어른이 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인은 마을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으며, 존경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마을에 판단하기 힘든 미묘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심판자의 입장이 되기도 한다.


우리 농악과 가물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발리의 가믈란은 우리 나라의 농악과 너무나 비슷한 점이 많다. 그 가운데 특히 농악이 높낮이가 없는 타악기와 유일한 선율 악기인 태평소와의 합주라는 점과, 가물란이 선율이 있는 타악기와 선율 악기인 술링Suling의 합주 음악이라는 점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그 밖에 농악과 가믈란이 모두 마을의 수호신을 위한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면서, 이를 통해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이 함양되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전수 방법이 악보를 쓰지 않고 구전심수적이라는 것도 공통점으로 들 수 있다.


    서로 다른 점은, 우리 나라의 농악이 이제 여러 가지 기능을 거의 상실한채 무대 음악적인 사물놀이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 데 반해, 발리의 가믈란은 원래의 여러 가지 의미와 기능 그리고 음악 내용 등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농민들은 근대화과정에서, 농악과 함께 마음의 고향을 잃었다. 이제는 농촌에 가도 농악을 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기 힘들게 되었다 옛날에는 농군이라면 누구나 농악 한 가락쯤은 두드릴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농악대를 구성하려면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연로한 노인들을 찾아내 억지로 맞추어야 한다. 이렇게 억지로 구성된 농악은 흥이 나지 않는다. 어쩌다 관계 기관에서 무슨 행사라도 벌이면서, 구색을 맞추기 위해 농악대를 구성하라고 하면, 농민들은 바쁜 농사일을 제쳐 두고 흥도 안 나는 농악을 두드려야 한다.


   발리 사람들이 가믈란을 소중히 여기면서 가물란을 중심으로 뭉쳐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모습은, 마음의 고향을 잃은 우리들 도시인에게 아련한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

화합의 악기, 가물란
   가물란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즐기고 노는 곳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명절이나 가정의 행사, 예를 들어 결혼식이나 생일 잔치를 벌일 때, 사람들은 가믈란을 연주하면서 춤과 노래로 밤을 지새운다. 심지어 장례식 때도 가물란이 사용된다. 발리 섬의 장례식은 슬픈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지 않는다. 그들의 장례식은 마치 축제 같은 느낌이 든다. 이것은 장례식 자체가 힌두교의 종교 의식에 속하기 때문이다. 힌두교에서는 죽음이란 다시 태어나기 위한 절차일 뿐이며, 윤회를 위해 거쳐야 할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가물란 음악은 누구나 연주에 쉽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 사회를 한 덩어리로 묶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가믈란 지도자가 단원들에게 특히 강조하는 사항 가운데 하나가 '조화'이다. 훌륭한 가믈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주 단원들이 한 마음 한 덩어리로 결속되어야만 한다. 또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가믈란 연주를 통해 생활에서의 절제와 억제를 배우게 된다. 이처럼 감정을 잘 절제해서 다른 사람과익 조화를 꾀하는 것을 인도네시아 말로 '이칼라Ikalas'라고 한다. 이칼라스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바람직한 인간 관계를 이루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믈란은 또한 와양쿨리트 같은 그림자 연극의 반주 음악으로도 사용되며, 종교 음악으로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주로 힌두교 의식에 사용되고 있는 가믈란이 최근에는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예배 의식에서도 사용된다. 미리 서양 악기와 가믈란을 함께 준비해 놓고, 때에 따라 서양 악기를 연주하거나 가믈란을 연주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두 종류의 음악이 예배 중에 사용되는 경우에, 신자들은 전통 음악인 가믈란 음악이 연주될 때 더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나라의 교회에서 국악 찬송을 부르자고 했을 때, 목사들이 어떻게 그런 음악을 교회에서 쓸 수 있느냐며 펄쩍 뛰던 것과 비교하면, 한편으로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믈란 음악의 장래


   인도네시아에도 최근 근대화의 바람이 불어 큰 공장의 건립과 함께 경제가 크게 발전하고 있다. 사회 저변으로는 유럽의 문화가 스며들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도 흔히 유럽이나 미국풍의 유행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방송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전통 음악이며, 정부에서 굳이 권장하지 않아도 전통 음악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음악 학교에서는 서양음악도 가르치지만, 수준이나 양적인 면에서 전통 음악이 훨씬 우세하다. 대부분의 대학이나 공장에는 늘 가믈란 세트가 마련되어 있어서, 일과 후에 가물란을 즐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 있는 대학교와 학술기관에서도, 가믈란을 가르치거나 연구하는 기관이 많이 있다. 가믈란 악기는 너무 무거워 운반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의 인도네시아 대사관 관저에서는 가믈란 세트를 마련해 놓기도 한다. 이 악기들은 평소에 가믈란 음악을 소개하는 데 쓰기도 하고, 가믈란 악단이 순회 연주를 할 때도 아주 요긴하게 사용된다.


   가믈란의 음악적 장래는 참으로 밝다. 인도네시아 국내에서 여러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즐기며 연주하고 있는 것은 물론, 외국 사람들까지 이 대열에 참여해 함께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 나라는 어쩌면 그렇게도 쉽사리 전통음악을 집어치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음악'이라고 하면, 곧 서양 음악을 일컫는 것이 되었다. 말하자면 서양 음악을 안방에 모시고, 국악은 사랑채로 밀어낸 형국이 되었다. 이런 현실을 누가 바로잡을 것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사회적인 이해와 국가의 지원이 없다고 한탄만 할 것인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맨 먼저 국악인이 국악이라는 잔칫상을 풍성하게 만들어야한다. 그래서 우연히 들른손님이라도 국악을 한번 맛본 뒤에, 그 맛이 그리워 다시 찾아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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