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link
  • 홈페이지
  • 로그인
  • 회원가입

POP

  • home
  • MusicGenre
  • POP

관련 이미지

G4



팝페라
92년부터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는 자신의 고향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가진 자선 공연 'The Pavarotti & Friends'를 통해 브라이언 아담스(Bryan Adams),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 스팅(Sting),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 등의 대중가수들과 자신의 영역을 파괴하고 다른 영역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각자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정도였지만 이후 성악 부분에서 팝의 대중성과 오페라의 예술성을 결합한 팝페라가 부각되기 시작한다.
팝페라란 용어는 <워싱턴 포스트>지가 팝과 오페라의 결합이라는 뜻으로 처음 개념화하면서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는 오페라 가수가 오페라 곡을 대중에게 친숙한 팝스타일로 편곡해서 부르는 형태 혹은 오페라 가수가 팝을 부르는 형태를 가리킨다. 한마디로 고급예술의 한계를 대중예술의 친근함으로 극복해 훨씬 더 강한 설득력을 찾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스코어, 그 의도는 적중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 성악 발성에 팝의 색깔을 입혀 대중음악 팬과 클래식 음악 팬들을 동시에 수확하며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다. 다른 일반적 정통 클래식 앨범에 비해서는 대여섯 배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이며 팝페라를 달고나오는 가수들도 쏟아지고 있다. 그 중 몇몇 유명세를 얻은 가수의 경우는 신드롬의 상황.
이미 용어에 팝이 붙었듯 팝페라의 '팝적 성향'은 다음과 같은 사실 하나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오페라의 경우 고전적 악기로 편성된 연주 외에 마이크조차도 불허할 정도로 음향 장비를 사용하지 않지만 팝페라의 경우 대중적 접근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음향장비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의 'Anytime anywhere', 아일랜드 출신 신예 팝페라 가수 케이 린치(Kay Lynch)의 데뷔앨범, 러시아의 신예 이프게냐(Evgenia)의 등이 그 증좌가 될 것이다.
상기한 것처럼 팝페라 가수의 약진은 놀랍다. 세계적으로 팬 층을 확보하며 팝페라 역사의 시작을 알린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이 1997년에 발표한 앨범 는 세계적으로 1000만장의 가공할 판매그래프를 그렸다. 그로 인해 팝페라는 단숨에 독자적 장르로 격상되었다. 올 2003년에 발표한 앨범 은 아라비안 나이트를 앨범 컨셉트로 설정하고 체코의 프라하, 이집트의 카이로 등지의 오케스트라와 작업하면서 장르의 벽을 한층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시켰다.
판매량으로 따지면 이탈리아의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도 뒤지지 않는다. 사라 브라이트만과 호흡을 고른 'Time to say goodbye'와 국내 오락 프로그램 '결혼할까요'에 삽입된 'Mai piu' cosi' lontano'로 국내에 지지 기반을 형성한 그는 (1997)를 출시해 국제적인 성공을 거둔 후 팝적인 색채가 농후한 (1999)를 빌보드 팝 차트 5위 안에 진입시켰다. 암울한 음반 시장에서 예외적으로 판매량이 꾸준하게 상승, 레코드회사에게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팝페라 음반의 수요가 급증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상대적으로 고급문화라는 클래식의 요소 덕분에 '격조'를 잃지 않는 가운데 팝이 주는 '친화력'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수요자 입장에서는 '쉬우면서도 폼이 나는' 것이다. 팝의 편곡과 노래 부르기가 투입되어 '쉽고' 클래식의 분위기가 버티고 있어 '우아한' 것이다. 불편하지 않은 동거를 넘어 성공적 크로스오버이다. 게다가 이 시대의 '멀티 감수성'에도 맞는다.
계속 배출되고 있는 후진 팝페라 스타들의 음악에서도 크로스오버 메커니즘은 여전히 시도되고 있다. 프랑스의 신예 소프라노 엠마 샤플린(Emma Shapplin)은 본격적으로 팝페라 음반을 제작하기 전에 친구들과 조직한 록 밴드의 보컬을 경험했다. (1998)의 'Favola Breve'의 신서사이저는 다른 소프라노들과 다른 경험을 했던 그녀의 음악이 전통에만 머물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지(Izzy)도 사라 맥라클란(Sarah McLachlan)과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의 음악에 관심을 표명하며 팝과의 접목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그녀는 (2001), (2002)를 통해 과거의 클래식에 현세의 영혼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친숙하게 접근하고자 편곡에 있어 현대적 뉘앙스를 가미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팝페라의 수용 층이 폭넓게 확산되었다는 사실은 어린 팝페라 가수의 잇단 출현이 증명한다. 1998년 12살의 나이에 클래식에 입문한 영국의 샬롯 처치(Charlotte Church)가 그렇고, 우리의 어린 소년 임형주를 빼놓을 수 없다.
샬롯 처치의 (2002)는 팝 발라드 'It's the heart that matters most'와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 등을 담았으며 임형주의 앨범 에는 비틀스의 명곡 'Here there and everywhere' 등 널리 알려진 팝송이 여러 곡 포함되어있다. 팝 팬들이 들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이 앨범은 국내에서 20만장 이상이 팔려나갔다. 성악적 발성과 팝의 크로스오버가 음반시장의 강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통 성악가 조수미도 그 트렌드를 수용했다. (2000)를 통해 팝페라를 시도하여 8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던 것이다. 조수미는 MBC 드라마 '허준'에서는 실험적 사운드를 담아낸 '불인명곡'을 불러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컴필레이션 앨범 <명성황후(The Lost Empire)>(2001)의 '나 가거든(If I leave)'에서는 팝적인 보컬을 선보이는 등 정통의 파괴에 앞장섰다.  
이처럼 팝페라는 클래식의 대중적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남성 아티스트들도 인기 면에서 여성 아티스트들에게 뒤지지 않으며 근래의 문화적 키워드가 되는데 한 몫 하고 있다. 오십 여 편의 오페라 경험이 있었던 알렉산드로 사피나(Alessandro Safina)는 팝, 칸초네와 오페라를 현대적 스타일로 결합시킨 음악으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잘생긴 외모까지 결합하여 여성 팬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민중의 테너(People's Tenor)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얻은 러셀 왓슨(Russell Watson)은 팝페라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영국의 철강공장 근로자 출신이란 점이 눈길을 끄는 러셀 왓슨은 성악 교육을 받은 적도 없으면서 (2000)란 작품을 내놓아 충격을 던졌다. 그의 출신은 시사하는 바 크다. 엄격한 교육과정을 통해 클래식에 입문할 수 있었던 지금까지의 상황에 '개방성'을 시범한 것이다. 이것은 대중성을 피력하는 팝페라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
이 외에도 조쉬 그로반(Josh Groban)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2001)은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가 프로듀스를 담당해 대중적인 요소를 더했으며,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는 그리스의 테너 마리오 프랑골리스(Mario Frangoulis)는 (2002)의 'Vincero Perdero' 등 클래시컬한 발라드 성향을 드러낸다. 현재 트렌드에 맞는 편곡으로 짜여진 앨범으로 팝페라의 기류에 합승하려 하고 있다.
가히 신드롬이라 할만한 팝페라의 인기는 대중의 기호가 옮겨감을 의미할 뿐 아니라 30대 이상의 세대가 그동안 음악으로부터 받았던 소외에 대한 어느 정도 보상을 받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소란스러운 음악을 피하고 차분하고 서정적인 음악을 찾는 세대에게 가뭄 속의 단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거기에는 10대 위주 음반 시장의 한계를 30대 이상까지 확대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도 움트고 있다.
안드레아 보첼리, 사라 브라이트만 등에 의해 갓 태어난 팝페라는 단숨에 큰 음악으로 성장했다. 국내에서도 조수미 임형주가 분발하면서 대중화로 발걸음이 바쁘다. 중, 고등학교 음악 시간 내내 듣고 배웠던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넘지 못했던 대중 진입의 경계선을 안드레아 보첼리, 사라 브라이트만, 조수미 등 팝페라 스타들은 훌쩍 건넌 셈이다. 자칫 지루해지는 그래서 대중의 외면을 받기 쉬운 클래식 영역이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는 대안의 장르라는 측면에서 팝페라의 자리는 이미 공고해졌다

Josh Groban
1990년대 후반을 휘몰아친 틴 아이돌 열풍은 팝의 영역뿐만 아니라 클래식까지 잠식했다.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 등의 성공에 주목한 음반 기획자들은 본능처럼 10대 꿈나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결과 샬롯 쳐치(Charlotte Church)와 베키 테일러(Becky Taylor) 같은 10대 소녀의 소프라노들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당당히 자리했다.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의 지도편달로 데뷔한 조시 그로반(Josh Groban)은 부드럽고 안정된 보컬로 안드레아 보첼리의 뒤를 이을만한 대표적인 크로스오버 성악가다. 1981년 2월 27일 미국 로스 엔젤리스(Los Angeles)에서 태어난 조시 그로반(본명: Joshua Winslow Groban)의 어린 시절은 평범했다. 학창시절 합창단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 “남들이 다 하는 것인 줄 알고”라고 회고하듯 자신의 미래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정상적인 성악 교육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은 뒤늦게 시작한 조시 그로반을 가장 어린 나이에 성공한 젊은 성악가로 인도했다.
합창단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인터로첸 아트 프로그램(Interlochen Arts Program)에 참여해 음반 관계자들로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고 팝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이비드 포스터도 조시 그로반에게 매료되었다. 테너와 바리톤의 중간적인 특별한 음역을 소유한 그로반한테 가능성을 발견한 데이비드 포스터는 1998년부터 그에게 팝과 클래식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과외교육을 시켰다. 17살에 명 조련사를 만난 조시는 빠르게 성장했다.
데이비드 포스터의 지원 사원 덕분에 워너 브러더스의 낙점을 받은 조시 그로반은 곧 데뷔 앨범 작업에 착수했다. 1집 <Josh Groban>은 그의 스승 데이비드 포스터가 프로듀서를 맡았으며 더 코어스(The Corrs), 샬롯 쳐치(Charlotte Church)가 목소리를 보탰다. 'Gira con me'와 같은 이탈리아 가곡은 물론 돈 맥클린(Don McLean)의 'Vincent', 영화 <씨네마 천국>의 'Love theme' 등 다양한 레퍼토리로 무장한 데뷔작은 빌보드 앨범 차트 8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고, 리차드 막스(Richard Marx)와 작업한 'To where you are'는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단기간에 크로스오버 팝의 최고 기대주로 떠오른 조시 그로반은 실황 음반 <Josh Groban In Concert>로 성공을 이어갔다. 그밖에 다양한 자선행사와 노벨 평화상 기념 콘서트 무대에 서면서 높아진 위상을 실감했고 깔끔한 외모 덕분에 인기 TV 시리즈 <앨리 맥빌>에 직접 출연하기도 하였다.

Kay Lynch  
아일랜드가 배출한 팝페라의 신성 ‘케이 린치’
아일랜드의 세계적인 뮤지컬 [리버 댄스] 리드 보컬리스트 출신의 여성
가수 케이 린치의 신비스럽고 독특한 크로스오버 음반 [UnConditional]

팝페라계의 주목 받는 신인으로 등장한 케이 린치는 U2를 비롯하여 엔야, 시네드 오코너, 코어스, 크렌베리스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많이 배출된 아일랜드의 캐리 지방 출신의 여가수다.
어려서부터 합창단에서 노래하면서 음악적 기량을 닦은 그녀는 이후 세계적인 히트작인 뮤지컬 [리버 댄스]의 리드 보컬리스트로 발탁되어 5년간 공연했으며 드디어 그녀의 솔로 데뷔앨범 [무조건적인UNCONDITIONAL]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녀의 이번 앨범은 아일랜드에서의 데뷔 음반인 동시에 한국을 포함한 세계 시장에서의 데뷔 앨범이다.

이번 앨범 [무조건적인UNCONDITIONAL]에는 총 9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3곡은 앨범을 위해 새로이 작곡된 곡들이며 1곡은 토마스 무어의 아이리쉬 멜로디, 나머지 5곡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레퀴엠’의 ‘PIE JESU 피에 예수’와 라흐마니노프의 ‘VOCALISE 보칼리제’, 구노의 ‘AVE MARIA 아베 마리아’ 그리고 슈베르트와 모자르트의 클래식 레퍼토리를 리메이크한 것들이다.

기존의 팝페라 음반들이 클래시컬한 편곡과 연주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면 케이 린치의 음악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운 모던한 편곡과 연주로 보다 세련된 감각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그녀의 창법은 독특한 매력으로 듣는 이를 매혹시킨다. 정통 클래식 수업을 충실히 받은 만큼 가히 클래식 소프라노의 그것에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가창을 들려주며, 사라 브라이트만 등 정상급 팝페라 가수들과 견줄 만큼 힘과 세기, 섬세함을 갖추고 있는 것.

케이 린치 음악의 성격은 앨범의 포문을 여는 첫 곡 "Unconditional"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 곡은 래리 호건과 케이 린치가 함께 만든 곡인 데, 케이 린치의 환상적인 보컬에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신디사이저의 울림이 좌중을 압도하는 곡.
이 곡에서 그녀는 "사랑은 우리들을 감싸고 빛은 우리와 함께 있다. 아무 조건 없이" 라는 간결하지만 뚜렷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이는 곧 그 자신 사랑이 되고 빛이 되는 음악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앨범의 본격적인 트랙으로 들어가 우리를 처음 맞는 곡은 "Pie Jesu피에 예수".
이 곡은 [캣츠], [오페라의 유령]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뮤지컬의 황제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또 하나의 역작 [레퀴엠]에 수록되어 있는 곡. 단일곡으로 여겨질 정도로 자주 불려지는 데, 이미 바바라 헨드릭스, 샤롯 처취 등이 불러서 국내에서도 사랑 받았던 바 있다.
그러나, 이 곡은 케이 린치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비트가 가미된 전자 사운드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르면서도 유창한 창법으로 노래하면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흥을 안겨주고 있는 것.
이어지는 "Vocalise보칼리제"는 라흐마니노프가 1912년 작곡한 곡으로 연습이나 연주를 위한 가사 없는 성악곡. 1915년 바이올린, 첼로,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도 편곡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다양한 스타일로 연주되며, 간혹 보컬 버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도입부 케이 린치의 음성이 가슴에 여운을 남기고 나면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등장하고 다시 케이 린치의 서정적인 보컬이 감정의 파고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편, 구노의 "Ave Maria아베마리아"는 평온함을 안겨주며, 슈베르트의 "Du Bist Die Ruh그대는 나의 안식처"는 봄날 같은 사랑의 찬가다. 신비한 느낌의 보컬과 드라마틱한 연주가 돋보이는 대곡 “Dreams”가 분위기를 압도하고 이어서 [아일랜드 가요], [랄라 루크]등으로 유명한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작곡가인 토마스 무어(1779 - 1852)의 켈틱풍의 명곡 "Silent, Oh Moyle"이 아일랜드의 민속적인 분위기와 이국적인 멋을 풍기고 있다.
반면 " Believe Me"는 [힙합 오페라]라는 부제가 붙은 곡으로 남성 랩퍼의 래핑과 케이 린치의 보컬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이루며 색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끝으로 음반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은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제 3곡 세쿠엔티아의 5부 "콘프타티스"를 리메이크한 "Confutatis". 본래 남성과 여성이 저주 받은 자의 像과 구원의 노래를 하면서 전개되다가 [엎드려 원합니다]라고 합창하는 부분인데, 불협화음과 반음이 교차하는 화성의 절묘한 표현력이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성스러운 곡을 완전히 해체 시켜 재현한 것은 그야말로 파격적이라 하겠다.
팝의 강국 아일랜드가 배출한 팝페라 가수 케이 린치.
그녀는 꿈꾸는 여성이다. 아울러 우리들을 꿈꾸게 하는 음악인이다. 그녀의 음악 안에서 사랑을, 빛을, 잃어버린 꿈을 되찾기를 소망해본다.

Alessandro Safina
테너 알레산드로 사피나  이탈리아 출신으로 유럽 지역에서 커다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티스트다.
팝과 클래식 그리고 거기에 이탈리아 칸초네가 한데 버무려진 알레산드로 사피나의 음반은 후발주자란 것 때문에 안드레아 보첼리와 비교당할 수도 있는 불리함을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로 극복해내고 있다.
그의 앨범에서는 ‘La Sete Di Vivere(내 인생의 모든 것)’과 ‘Luna(달)’ 가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다. 전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바람을 가사로 담아낸 곡으로  편안하면서도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알레산드로의 음색이  가장 매력적인 작품이며 후자는 싱글 커트되어 지난 해 유럽에서 대단한 반응을 얻었던 작품으로  ‘당신만이 내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라며 뜨거운 사랑을 하소연하는 여성 코러스로 시작되는 정열적 아리아이다.  이밖에 고향 시에나를 노래한 부드러운 발라드 ‘Siena’라든가 정열적인 기타 선율이 흐르는 ‘Il Mirto & La Rosa’ 등 로맨틱한 감성과 정열이 혼재하는 남성미 넘치는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물랑루즈!에서 이완 맥그리거가 부른 Your Song 뒷부분에 등장하는 달님 서포트 보컬 주인공

알레싼드로 사피나의 칸초네는, 엄밀히 보아서 이 두 장르의 중간에 해당하는 칸초네라고 볼 수 있겠다. 왜냐하면, 우선 사피나의 음성은 거의 전형적인 테너의 목소리와 그 발성법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래의 가사내용 또한 서정시(抒情詩)에 가까운, 비교적 덜 통속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피나의 칸초네들이 불려지는 방식 자체는 대중가요를 부르는 방식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이태리의 스타 테너인 안드레아 보첼리가 불러서 유명해진 [그대와 함께 떠나리 (Con te partiro)]라는 제목의 칸초네가 불려지는 방식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결국 사피나가 부르는 칸초네의 성격은, 비교적 고상한 대중가요로서의 칸초네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요즈음에 유행하는 용어로서, 소위 "크로스오버"형 칸초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피나가 부르는 칸초네의 음악적 양식(樣式)이 어떻든 간에, 이 앨범을 들으면서 우리가 제일 먼저 끌리는 점은, 그의 잘 생긴 미남형의 외모가 그렇듯이, 시원스럽고도 힘차며 동시에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그의 훌륭한 목소리이다. 비교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에, 보첼리의 음성이 유연하고 굴곡지며 서정적이라면, 사피나의 목소리는 힘차고 직선적이며 격정적인 질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보첼리의 음성은 리릭 테너(서정적인 테너)의 특질을 지녔으며, 한편 사피나의 음성은 로맨틱 테너(낭만적인 테너)의 특성을 지녔다는 말이 된다. 사피나의 칸초네를 들으면서, 우리는 사피나가 왜 낭만적인 예술가곡이나 낭만적인 오페라를 부르지 않을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왜냐하면, 그의 목소리는 그와 같은 클래식한 레퍼토리들도 충분히 잘 불러낼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 처음으로 음악계에 데뷔하는 사피나로서는, 우선 노래를 부르는 자신이나, 자신의 노래를 들을 청중들 모두에게, 비교적 접근이 용이한 대중적인 레퍼토리인 칸초네를 택했다고 볼수 있겠다. 하지만, 다음이나 그 다음 앨범에서 보첼리의 경우처럼 클래식 레퍼토리가 불려지지 말라는 법은 없으며, 그런 점에서 우리들은 그의 후속 앨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미 이 앨범 속에서, 사피나의 노래가 지니는 매력과 힘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특히 3번 트랙의 [루나 (Luna tu : 달님 같은 그대)]라는 제목의 낭만적인 노래는, 최근에 이곳 파리의 텔레비전 방송의 여흥프로에서도 자주 초대되어 불려지는, 한마디로 멋있는 곡이다. 이 노래에서 알 수 있듯이, 직선적으로 쭉 뽑아 올라가는 그의 힘찬 목소리는 그야말로 테너의 남성적인 매력을 담뿍 풍기고 있다. 그리고 특히 중간 음역에서, 약간 안으로 굽어드는 것 같은 어두운 음색을 통해 내보이는 그의 호소력 담긴 창법은, 그의 목소리에 낭만적인 멋을 첨가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로부터, 보첼리의 부드러운 서정성이 최근 몇 년 동안의 유럽의 크로스오버 음악계를 풍미했다고 한다면, 이제는 사피나의 힘찬 낭만성이 금후에는 크로스오버 음악계를 휩쓸 것이라고 우리는 쉽게 내다볼 수 있다. 이는 크로스오버 음악계에서도, 언제나 새로운 혜성이 나타나서 새로운 음악적 경향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실이다. 우리는 사피나의 노래를 통해서 비로소 이때까지 감추어졌던 칸초네의 진정한 낭만주의가 어떻게 그 새로운 모습을 지니는가를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사피나의 음성이 풍겨내는 넘치는 멋의 신낭만주의(新浪漫主義)는, 칸초네의 지평을 새롭게 넓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유럽의 음악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민중들의 음악과 클래식 음악의 두 영역이 끊임없이 상호 모방하고 교류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그 한 예로서, 중세의 성가들이 민중의 가요로부터 멜로디를 따와서 그것을 기준 선율로 삼아서, 그 위에 부속 선율과 종교적인 내용의 가사를 부가하는 방식으로 많이 작곡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에 실린 크로스오버 형의 칸초네들은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을 새로운 영역에서 그 접목을 시도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그 성공적인 사례를, 보첼리의 [그대와 함께 떠나리(Con te partiro)]라는 곡에서, 그 세계적인 흥행을 통해 이미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앨범에서 사피나가 부르는 칸초네의 반주에서, 피아노를 이용한다던가 혹은 오케스트라적인 악기편성을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클래식 풍의 기악 반주형태를 자주 취하고 있음을 우리는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크로스오버적인 경향은, 한편으로는 정통 클래식 음악이 지니는 지나친 형식적 딱딱함과 악곡의 내용적인 어려움을 피하거나 완화할 수 있는 이점을 지닌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가요의 통속성으로 쉽게 빠져드는 것을 경계할 수 있게 하는 이점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크로스오버 적인 음악은, 이 앨범의 경우처럼 성악의 경우이건, 혹은 기악의 경우이건 간에, 더욱 많은 청중의 폭을 확보할 수 있는 장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맹물같은 음악이 될 수 있는 위험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크로스오버의 음악에는 상당한 수준의 음악성(音樂性 : musicalit )이 내포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첼리의 칸초네 앨범인 [로만짜]의 경우처럼, 사피나의 첫 녹음인 이 앨범은 매우 훌륭한 음악성의 수준과 낭만적인 풍요로움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 바로 이런 점들이 오늘날 사피나의 노래가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Charlotte Church
지난 1998년 12살의 나이에 클래식 가수로 입문해 천사의 목소리라는 별칭으로잘 알려진 영국 태생의 성악가이다.
영국웨일즈의 카디프에서 1986년 2월 21일 태어난 Charlotte Church는 여덟살때 한 탤런트 쇼를 본 샬롯은 그 쇼의 프로듀서에게 전화를 걸었고 전화로 노래를 들은 방송국측의 요청에 의해 샬롯은 이 프로에 출연해 청중을 사로잡게 된다.
그리고 몇달후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를 부르는 샬롯을 본 소니 뮤직 UK의책임자의 눈에 띄어 즉석에서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지만 그녀는 이미 유명 인사가 되어 98년 "Voice of an Angel"이라는  데뷔 앨범을 12세의 나이에 발표한 소프라노 Charlotte Church의 앨범은 영국의 클래식 차트 1위를 정복했고 팝 차트에서도 10위권에 드는 크로스오버 히트를 기록했다.
첫 앨범에서 Charlotte는 16세기 작곡가 지울리오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로부터 로이드 웨버의 '피의 예수'까지 광범위한 시대의 작품은 물론 웨일즈와 미국 민요등 다양한 곡들을 소화해 냈다. 어리지만 비범한 재능을 십분 발휘한 것이다. 특히 청아한 음색과 성숙한 음악성은 Charlotte가 어린 시절 일시적인 주목을 끄는 성악가가 아닐 것임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 해 10월엔 찰스 황태자의 50세 생일 기념 행사에서 노래를 했고 12월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크리스마스 콘서트 무대에도 섰다. 유명한"라 스칼라" 극장 무대에서 오페라 "나비부인"에 출연하는 것이 꿈인 샬롯은 이제 완벽한 팝 아티스트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Charlotte는 평범한 소녀였다. 성악가는 단지 꿈이었다. 8세때 우연히 지역 노래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청중들을 매료시켰는데 이 장면이 국영 TV를 통해 전국에 중계되자 뜻하지 않은 좋은 반응을 얻게 된 것이다. 한 TV 프로그램은 Charlotte를 초청했고 그 방송에서 즉흥적으로 부른 로이드 웨버의 '피의 예수'는 모든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을 보게 된 소니뮤직에세 Charlotte와의 계약을 추진하게 되었고 첫 음반이 발매된 것이다.
1998년 첫 앨범은 5주만에 영국에서 플래티넘에 올랐고 급속도로 전국에서 히트 앨범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 미국의 빌 클린턴,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 요한 바오로 2세 앞에서의 공연도 성공적이었다. 미국 TV토크쇼에서도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이제 Charlotte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의 공식 앨범 출반도 예상치 못한 호응을 가져왔고 곧 슈퍼스타가 되었다. Voice of Angel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홍콩을 방문 하기도 전에 골드 레코드가 되었다. 라이브 공연비디오도 가는 곳마다 대사건이 되었다.

뛰어난 외모와 나이에 어울리지않게 성숙한 목소리,음악성이 그녀를 우리시대의 새로운 디바로 만들어줄 가능성을 잠재시키고 있다.


Andrea Bocelli
보첼리는 1958년 9월 22일 이탈리아 투스카니(Tuscany) 지방의 포도와 올리브를 재배하던 시골가정에서 태어났다. 자신을 스스로 '시골의 소산'이라고 묘사하는 그는 자신의 품성과 성격이 투스카니의 가족 생활 그리고 시골의 문화와 전통에 상당 부분 은혜입었다고 생각한다. 언뜻 보기에 구도자 같은 그의 모습은 그만큼 자연과 가족, 음악에 둘러 쌓였던 투스카니의 목가적인 생활에 의해 양육된 것이다.
일찍부터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였던 보첼리에게 그의 부모는 시골의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피아노 강습을 시켰으며 친구들은 그를 격려했다. 오페라 가수의 꿈을 키워가던 그는 당시 오페라 아리아와 이탈리아 가곡들을 섭렵했고, 프랑코 코렐리(Franco Corelli) 같은 유명 이탈리아 테너들에게 빠져들었다. 그 덕에 어릴 때 이미 보첼리의 목소리는 그 지방에서 정평이 나기 시작했다.
앞길이 창창했던 그는 그러나 불행히도 12살 때 시력을 잃게 된다. 그에 의하면 그것은 단순한 사고였다. 축구를 하던 도중 머리를 부딪혔고 그 때 뇌를 다쳐 점차 시력을 잃게 되어 결국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분명 엄청난 시련이었지만 보첼리는 주저앉지 않았다. 오페라 가수의 꿈을 일단 접고 그는 '피사(Pisa) 대학' 법대에 진학했으며 박사 학위를 취득, 잠시동안 법정 선임 변호사로 활동했다.
변호사 생활을 하던 그는 차츰 음악에 열정이 다시 피어오르는 걸 느끼고 과감히 변호사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안드레아 보첼리의 아버지는 그의 결정에 극구 반대했다.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하지만 몸도 불편한 아들이 과연 다른 쟁쟁한 성악가들과 경쟁해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한 것이다. 그래도 안드레아는 아버지를 거역하고 결국 가수의 길을 선택했다. 당시 보첼리 부자의 상처는 무척 컸으며 그래서 한동안 관계가 단절됐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염려는 사실상 기우였다. 멀지 않은 훗날, 아들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세계 정상의 테너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의 관계 개선을 간절히 바랐던 안드레아 보첼리는 1999년 앨범 [Sogno]에 수록한 '아버지께(A Mio Padre)'라는 곡을 통해 비로소 화해를 청했다. 아버지에게 편지를 낭독하는 형식으로 된 이 곡을 듣는 순간 안드레아의 아버지와 온 가족은 눈물 바다가 되었고 그 부자는 극적으로 화해했다. 그러나 사랑의 기쁨도 잠깐. 이듬해 그의 아버지는 영면(永眠)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가수의 길에 접어든 보첼리는 우선 그의 영웅 프랑코 코렐리의 제자가 되어 본격적으로 수련을 쌓기 시작했다. 1992년 'Miserere'란 곡의 데모 작업에 참여하면서 그의 음악 생활에 여명이 동튼다. 벨 칸토 창법에 충실하면서도 부드러우며 공명하는 비브라토가 특징인 보첼리의 목소리는 이탈리아의 대표급 록 뮤지션 주케로(Zucchero)와 파바로티에게 크나큰 감명을 준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파스빈더의 영화 제목이 떠오르기도 하는 그의 슬픔 어린 음성은 곧 레코드사에도 알려지고 그 때부터 보첼리는 마음껏 그의 재능을 펼쳐 보이며 승승장구한다.
1994년 이탈리아 팝 음악제인 '산 레모 송 페스티벌'에서 'Il Mare Calmo Della Sera'란 곡으로 우승한 그는 자국에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하룻밤 사이에 스타가 되었다. 같은 해 데뷔 앨범을 발표한 그는 이듬해 드디어 국제적 지명도를 얻게 되는 발판을 마련한다. 두 번째로 내놓은 앨범 [Bocelli]에서 싱글 'Con Te Partiro'가 크게 히트했고, 그 곡은 얼마 후 사라 브라이트만과의 듀엣 곡 'Time To Say Goodbye'로 번안되어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곡은 독일의 세계 라이트 헤비급 권투 챔피언 헨리 마스케의 은퇴 경기에서 불려진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1997년 영어권 국가들을 겨냥한 세계무대 데뷔 앨범 [Romanza]를 출시했고, 'Time To Say Goodbye'가 실린 그 앨범은 예상대로 1천8백만 장이 팔리며 유럽 전역뿐 아니라 미국의 팝 수요자까지 만족시켰다. 이어 1999년에는 '꿈'이란 뜻의 두 번째 크로스오버 앨범 [Sogno]가 발매 즉시 빌보드 팝 차트 5위 내에 진입하는 경이를 연출했다. 셀린 디온, 이탈리아의 국민가수 에로스 라마조띠 같은 팝 가수들이 듀엣으로 참여한 이 음반은 대중들에게 더욱 더 눈 높이를 맞춰 훌륭한 팝 음반으로 평가받았다.
더욱 놀랍게도 그 앨범이 발매되고 미국 팝 앨범 차트 상위권에 오르자 동시에 그의 앨범 4장이 모조리 차트에 등장했다. 이는 1987년 U2, 1992년 가스 브룩스 이후에 첫 번째 위업이었다. 셀린 디온과 함께 한 '아카데미' 시상식 축하 공연, 또 '그래미' 공연 등을 지켜본 미국 언론들은 그의 팬들에게 '보첼리매니아'(Bocellimania)라는 의미 있는 문구를 붙였다(여태껏 이런 문구를 붙인 예는 비틀스나 그레이트풀 데드 정도 밖에 없다).

Becky Taylor
영국출신 팝페라 가수
베키 테일러는 이미 일곱 살 때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 에포닌 역을 맡았고 10세 때엔 영국 예술가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BBC TV의 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를 부르며 끼를 선보였다고 한다. 거기에 춤과 연기 실력도 뛰어난 만능 탤런트의 자질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소속사의 선전처럼 베키 테일러가 샬롯 처치 타도로 목표로 철저하게 개발된 비밀 병기란 사실이다. 뛰어난 재능에 덧붙여 기획자의 의도대로 치밀하게 단련을 받은 것이다
그녀의 데뷔 앨범 [A Dream Come True]는 히든 트랙 ‘God Help The Outcasts’를 포함해 모두 15개의 트랙이 담겨 있다. 주목할 것은 베키 테일러가 주로 선곡에 참여했다는 레퍼토리의 구성. 베키를 위해 특별히 작곡되었다는 ‘Song Of Dreams’ 이외에는 [오즈의 마법사] 중 그 유명한 ‘Over The Rainbow’를 비롯해 [My Fair Lady] 중 ‘I Could Have Danced All Night’ 등 뮤지컬 삽입곡들과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중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비밀의 화원(The Secret Garden)] 중 ‘Winter Light’ 등 영화 음악, [피터 팬] 중 ‘Just Beyond The Stars’, [아나스타샤]중 ‘Once Upon A December’ 등 애니메이션 삽입곡을 담고 있는 등 클래식 쪽보다는 팝 레퍼토리를 주로 소화해내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클래식 레퍼토리에서 출발해 최근 발표한 3집 [Enchantment]에서 뮤지컬 삽입곡을 대거 수록하며 팝쪽으로 영역을 넓힌 샬롯 처치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
또 한가지 베키 테일러에게서 눈여겨 볼 것은 열 세살이란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이다. 성숙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음색은 마치 리앤 라임스가 처음 팝 신에 나타났을 때 모두들 그녀의나이가 열 네살이란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샬롯 처치가 데뷔 당시 앳된 외모와 소녀다운 순수한 목소리로 주목받았던 것과도 대비되는 부분.
어쨌든 클래식 음악계의 10대 돌풍도 베키 테일러의 등장으로 대결 구도로 접어들게 되었으니 앞으로의 양상이 흥미롭기 그지없다.

Mario Frangoulis
마리오 프랑골리스
아프리카의 로디지아-1980년 독립해 짐바브웨로 이름을 바꾸었다-에서 태어난 올해 35세의 이 그리스인 테너는 팝페라 가수로서의 성공 요건인 목소리에 배우 수업을 받기도 한 매력적인 용모까지 갖추고 있다. 게다가 기존 노래들을 재해석하는데서 더 나아가 직접 작곡을 해내며 송라이터로서의 재능 또한 보여주고 있다.
네살 때 그리스로 건너가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을 독학으로 공부한 그는 어린 나이에서부터 작곡을 시작했고 17세 때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Guildhall School of Music and Drama]에서 연기 수업을 받았다. 런던의 웨스트 엔드에서 [레 미제라블]과 [오페라의 유령] 등에 출연했던 그는 우연히 [마리아 칼라스 콩쿠르]에 참가했다가 상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에 장학생으로 입학을 한다.
그 뒤 이탈리아 로마에서 스페인 출신의 명 테너 알프레도 크라우스(Alfredo Kraus:1927-1999))를 사사한 뒤 뮤지컬과 오페라 등을 통해 두각을 나타냈다. 결국 [소니 클래시컬]과 레코딩 계약을 맺고 1998년부터 레코딩 작업에 들어가 세계 시장을 겨냥한 [Sometimes I Dream]을 발매하기에 이르렀다.
Sometimes I Dream(2002)
팝페라 가수로서의 성공 요건인 목소리에 배우 수업을 받기도 한 매력적인 용모까지 갖추고 있다. 게다가 기존 노래들을 재해석하는데서 더 나아가 직접 작곡을 해내며 송라이터로서의 재능 또한 보여주고 있다.
이탈리아어와 영어, 그리스어 그리고 스페인어 등 무려 4개국 언어로 노래를 불러주고 있는 이 앨범에서 달콤하기 그지없는, 마치 살살 녹아내리는 듯한 아이스크림 같은 보컬로 청자를 유혹하고 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의 오리지널 스코어에 가사를 입힌 ‘Buon Giorno Principessa', 유명한 이탈리아 영화음악가 니노 로타와 영화 제작자 리나 베르트뮬러가 만든 ‘Canzone Arribita(미치광이의 노래)' 등과 함께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중 유명한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le)'에 멜로디 일부를 덧입힌 타이틀 트랙 ‘Sometimes I Dream' 등이 실려있는데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커다란 인기를 얻었던 무디 블루스(Moody Blues)의 1977년 히트곡 ‘Nights In White Satin'의 리메이크. 원곡을 불렀던 무디 블루스의 보컬 저스틴 헤이워드가 보다 서정적으로 편곡된 이 작품에서 마리오 프랑골리스와 듀엣을 들려주고 있는 것은 감상자를 즐겁게 하기 충분한 깜짝 쇼다.
Follow Your Heart(2004)

Evgenia
4옥타브를 넘는 자유로움 - 잊을 수 없는 매혹의 목소리
미성과 미모를 겸비한 러시아의 '키메라'
이프게냐(Evgenia)의 "Evgenia"
이프게냐 잠차로바(Evgenia Zamchalova)
이프게냐 잠차로바(Evgenia Zamchalova)는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촉망 받는 재능이 넘치는 신예 가수이다. 그녀가 등장하는 모든 무대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한다. 사실 그녀는 가수가 무대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아름답고 힘이 넘치는 보컬 구사 능력, 아름다운 미모와 몸매(10대 시절 미인대회 우승 경력) 그리고 관중을 사로잡는 환상적인 무대 매너가 그것이다.

스탈린그라드(Stalingrad)의 볼가(Volga)에서 태어난 그녀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음악을 비롯한 노래와 춤에 재능을 보였다. 7살 때부터 음악 레슨 및 클래식 발레를 시작하여 후에 가족이 시베리아의 Surgut로 이주한 후에도 그녀의 교육은 계속되었다. 18세에 그녀는 지역의 음악대학을 장학생으로 졸업한 후 더 나은 교육과 큰 무대를 찾아 그 곳을 떠나게 된다. 1991년 모스크바에 도착한 그녀는 러시아에서 가장 크고 명성이 높은 극장인 Russian Academy of Theatre Arts (GITIS)의 입학 허가를 받게 되는데 그녀의 입학 허가 공연은 너무나 뛰어난 점수를 받아 곧바로 2학년으로 진학하게 된다.

2년 후 이프게냐는 막심 두나에프스키(M. Dunaevsky)의 뮤지컬 "Solomea"에서 주인공 'Solomea' 역으로 첫 프로 데뷔를 하기에 이른다. 이 뮤지컬의 성공으로 인하여 이프게냐는 핀란드, 코스타 리카, 유고슬라비아, 니카라구아 등 많은 나라로 투어를 하게 된다. 그녀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그녀는 스트라우스(J. Strauss)의 <Die Fledermaus> 카만(I. Kalman)의 <The Queen of Czardas>, 레가(F. Legar)의 <Merry Widow> 등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오페레타의 아리아를 부를 수 있는 무대를 꿈꾸어 왔다.

1년 후인 1995년 이프게냐는 Moscow Theatre of Operetta에 가입하여 무려 6년 동안 10개 파트를 연기하게 된다. 이프게냐의 레퍼토리는 비발디(A. Vivaldi)의 <Sposa, son disprezzata>를 비롯한 클래식 아리아를 포함한다. 오페라 보칼리스트로서의 그녀의 명성은 점점 커져 마침내 1996년 제 2회 Russian Competition of the Operetta and Musical Singers에서 대상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1999년 그녀는 the orchestra of the Moscow Theatre of Operetta 와 함께 위대한 오페레타 아리아 공연실황 앨범을 발표하기에 이르는데 이 공연은 러시아 국영 TV로 생중계되었고 1년 후 이 공연을 담은 "Operetta Favorites" 가 CD와 VHS로 발매되었다.

2001년 이프게냐는 보다 독립적으로 음악 경력을 쌓기 위해 극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2002년에 발표한 그녀의 첫 독집 앨범인 "Our Russia" (미국판 "Centuries of Love")는 그녀가 좋아하는 클래식 보컬곡들을 일렉트로닉 버전으로 만들어 부른 곡을 포함하는데 그리그(E. Grieg), 비발디(A. Vivaldi), 베르디(G. Verdi) 및 다른 작곡가들의 곡을 그녀만의 해석으로 들려준다. 이 앨범에서 그녀는 원곡에 보다 가깝게 재창조하기 위해 자신에게만 곡을 주는 러시아의 유명한 작곡가, 편곡자들과 함께 작업하였다.

2000년부터 이프게냐는 뉴에이지 또는 neo-classical 스타일 음악작곡가이자 이프게냐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인 파벨 포미초프(P. Fomitchov) 긴밀한 협조체제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톨키엔(J.R.R. Tolkien)의 환타지 소설에 영향을 받은 "Music of the Elves"와 아름다운 고품격 센슈얼리티를 강조한 "Alchemy of Love" 앨범을 진행 중에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파벨의 일련의 서사시인 "Music of the Elves"에서 비롯한 <Galadriel>의 원 가사는 이프게냐 자신이 직접 쓴 것으로 톨키엔이 창조한 요정언어로 쓰여졌다. 이프게냐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멋진 멜로디의 조화는 전세계 톨키엔 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으며, "Top10 Celtic songs" 차트에서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프게냐는 Moscow Kolonnyi Zal (전에는Dom Soyuzov로 알려짐), Conservatoria im. P.I. Tchaikovsy, Gosudarstvennyi Tsentralnyi Konzertnyi Zal 등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러시아의 많은 무대에 섰다. 이프게냐는 또 지역 사회를 위해 고아를 위한 자선 공연을 벌이고 있는데 러시아 TV인 RTR에서 그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녀는 또한 1999-2001년 동안 러시아 제 3위 채널인 "Center TV"-Moscow"의 "Wider Circle" 이라는 뮤직 쇼에 출연하여 시청자들이 뽑은 "최우수 출연자"로 선정되기도. 점점 그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이프게냐는 2002년 러시아 국영 TV인 RTR의 "Vivat, Victoria!" 등 6개의 뮤직 쇼에 연속 출연하고 있는데 이 방송의 시청자는 무려 7,500만 명에 이른다고.

아름답고 힘이 넘치는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를 이미 러시아 최고의 소프라노 자리에 올려놓았다. 이 앨범 "Evgenia"에 수록된 14곡은 그녀의 앨범 "Our Russia"와 "Operetta Favorites" 그리고 Pavel과의 공동 앨범 "Music Of The Elves"에 수록된 곡으로 각 종 차트에서 이미 그 성공이 입증된 곡들이다.

Russell Watson
“공장 근로자에서 팝페라계의 스타로 떠오르다.”
항상 ‘꺼리’를 찾아 헤매는 기자들에겐 이 얼마나 기사로 다루기 좋은 인간 승리의 휴먼 스토리인가. 이는 바로 당당히 하나의 장르 아닌 장르로 자리잡은 클래시컬 크로스오버, 특히 팝페라 계의 새얼굴로 주목받고 있는 영국의 테너 러셀 왓슨의 이야기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것은 그가 전혀 정식으로 성악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다는 사실.
왓슨은 지난 2000년 영국에서 선보인 데뷔 음반 [The Voice]이 클래식 차트에서 16주간이나 1위를 차지한데 이어 팝 차트에서도 5위를 차지해 진정한 크로스오버 히트를 기록했다(주:크로스오버란 서로 다른 장르를 융합해내는 ‘퓨전’의 의미도 있지만 ‘크로스오버 히트’라고 하면 다른 장르의 차트에서도 히트를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이 음반은 그 해 장르를 통틀어 영국에서 발매된 음반들 중 33위에 랭크되었고 이는 데뷔작으로는 영국 클래식 음반계에서 보기 드문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결국 이듬해 2월 열린 클래시컬 브릿 어워드에서 ‘최우수 앨범’과 ‘최우수 데뷔 앨범’으로 선정되었고 통산 150만 장이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왓슨이 테너로 성공하기까지의 성공 스토리를 들여다보면 더욱 극적이다. 맨체스터에서 멀지 않은 설포드의 평범한 공장 근로자였던 왓슨은 세계적인 테너 가수를 꿈꾸며 주말마다 시내의 조그만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곳에 들른 매니저의 눈에 띄어 음악계에 얼굴을 내밀 기회를 잡게 되었다. 그리곤 곧 유명한 클리프 리처드 공연의 오프닝 무대에 서게 되는 기회를 잡게 되었고, 때마침 그 공연을 보러왔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팀의 구단주가 왓슨의 목소리에 반해 그에게 축구 경기 결승전에서 노래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그야말로 인생 대역전의 기회가 훤히 펼쳐진 셈. 물론 실력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는 했지만, 모든게 척척 맞아떨어진 것을 보면 운 또한 좋았던 셈이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오페라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못 이루고’ 등의 아리아와 이탈리아 가수 주케로의 ‘Miserere’, 루치오 달라의 명곡 ‘카루소’, 그리고 사이먼과 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 프레디 머큐리와 몽세라 카바예가 불렀던 ‘Barcelona’ 등의 팝 레퍼토리를 섞었던 데뷔 앨범으로 화려하게 음악계에 진입한 그는 이듬해인 2001년 발표한 2집 [Encore] 역시 오페라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 등의 아리아, ‘오 솔레 미오’ 등의 가곡과 함께 팝 음악을 섞어놓았지만 좀 더 팝적인 느낌이 강화된 음반이었고 결국 12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는 해당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퀸의 ‘Bohemian Rhapsody’ 등의 팝과 ‘산타 루치아’ 등의 클래식 레퍼토리를 포함했던 3집 [Reprise](2002) 역시 만족스러운 음반 판매량을 보이며 그를 확실한 스타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Izzy
영국 태생으로 ‘팝페라의 공주’란 별명을 얻고 있는 이지(본명 이소벨 쿠퍼) 역시 매혹적인 목소리 못지 않은 여성적 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경우. 게다가 세계 시장에서의 크로스오버 데뷔작 [Ascolta](2001)를 내고 그 해 두 차례나 내한을 하며 한국에서 팝페라 붐이 조성되는데 한 몫을 했다(영국에서는 1999년 클래식곡과 창작곡을 담은 [Libera Me](1999)를 낸 적이 있다
팝과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자유로움. 마돈나를 좋아하는 28세 신세대 소프라노 이지. 그녀는 네살때 리코더를 연주하며 음악을 시작했다. 피아노, 클라리넷, 플루트를 배웠으며, 9세때 성가대 지휘자의 권유로 노래를 시작했다.
"제가 생각해도 기묘한데요. 전 9세때 클래식 싱어가 되는게 꿈이었어요. 팝 가수가 아니구요."
이지는 학교 성가대에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해 16세때 로열 앨버트홀과 페스티벌 홀에서 연주했다. 이어 성 프란시스 바실리카와 피렌체성당에서도 노래할 기획을 얻었다.

길드 홀 음악학교 재학당시 이지는 색다르게 해석한 아리아와 창작곡으로 구성된 데뷔 앨범 「리베라메」를 발표했고, 이 앨범으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이지 특유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대중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제 경험을 음악에 명확히 담으려고 해요. 최대한 감정을 실어서요. 진실한 연주는 사람들의 감정을 빼앗게 마련이거든요."

이지는 사라 맥라클란, 마돈나, 핑크 플로이드 등의 음악을 좋아하는
신세대다. 그녀는 자신의 노래가 한 장르로 한정되는 것을 꺼려한다.
때문에 그녀는 클래식 레퍼토리를 원곡과 다르게 편곡하거나 대중적인
곡들을 거침없이 노래한다. 그녀의 무기는 젊음이다. 그 젊음으로 인해
다양한 실험들이 용인되고 사랑받는 것일테다.

"이름이 왜 이지나구요? 학교다닐 때 사람들이 제 진짜 이름인
'이사벨'을 '이지'로 쉽게 줄여 부르더군요. 무척 바쁜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예요. 클래식 싱어에게는 잘 어울리지 않지만, 매우 젊고
신선하게 들리잖아요?"

이지가 2000년 2집 「아스콜타」로 우리와 만났다. 이미 유럽에서
독특한 목소리를 가진 스타일리스트로 널리 알려져있다. 「리베라메」가
영국 클래식 차트 1위를 차지했고, 1999년 최고 여성 연주가 부문
최종 수상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제 목소리가 클래식뿐만 아니라 모든 곡들을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싱어들보다 덜 제한된 셈이지요. 이것은
제게 무한한 자유를 줍니다."

이지는 정통 클래식 소프라노보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크로스오버
싱어로 자신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Sarah Brightman
영국 버크햄스테드에서 태어난 사라 브라이트만은 3살 때부터 에름허스트 발레학교에서 공부했으며, 12살 때 데뷔했다. 16살 때에는 댄스 그룹 팬 피플(Pan People)의 멤버로 활동했으며, 18살 때 초연된 뮤지컬 <캣츠>의 공개 오디션에 합격, 뮤지컬 가수로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 유명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결혼하면서 <오페라의 유령>, <레퀴엠>, 등 그의 대표작의 초연 무대에 전격 발탁됐고, 그 출연 작품의 폭발적인 성공으로 당대 최고의 뮤지컬 스타로 성장하게 된다. 또한 플라시도 도밍고와의 협연,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호세 카레라스와의 듀엣 등으로 사라 브라이트만은 전세계적인 명성까지 얻게 된다.
그 후 앤드루와 이혼하면서 잠시 공백기를 거쳤지만 다시금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은 후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그 곳에서 만난 작곡가 프랭크 피터슨(Frank Perterson)이 만든 발라드 Time to say goodbye를 맹인 남성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와 불러 전세계적으로 1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제 2의 전환기이자 전성기를 이루게 된다.
그녀가 다시 2년만에 또 다른 신비의 마력을 담은 신작 EDEN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앨범 발매와 함께 1월 18일부터 프로모션차 방한한 것이다. 너무 바쁜 스케줄상 인터뷰 시간을 가질 수는 없었지만 국내에서 사라 브라이트만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던 때였다.
Time to say goodbye는 원래 안드레아 보첼리의 솔로 앨범에 들어있던 곡이었다. 사라 브라이트만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독일 출신의 세계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헨리 마스케로부터 자신의 은퇴 경기의 오프닝 곡을 의뢰받고 무슨 노래를 고민하던 차에 이태리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르는 Con te partiro를 듣고 그를 찾아가 함께 부르자고 제안을 했다고 한다. 사라 브라이트만은 이미 ‘95년에 헨리 마스케와 그라시아노 로치지아니의 라이트 헤비급 세계 타이틀 매치에서 그녀의 남자친구이자 프로듀서인 프랭크 피터슨이 작곡한 A question of honour를 부른 적이 있기 때문에 헨리 마스케가 정중하게 은퇴경기에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래서 ’96년 11월 17일 2천만 명 이상이 시청하는 헨리 마스케와 버질 힐의 경기에 앞서 진행된 은퇴식에서 사라 브라이트만과 안드레아 보첼 리가 Time to say goodbye를 불렀고 체육관 관중과 TV 시청자들은 당시 상황과 걸맞은 그 노래에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마스케는 그날 경기에서 판정패를 당하고 링에서 내려와야 했는데, 관중들은 기립해서 그를 위해 Time to say goodbye를 다시 불렀고 마스케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는 마치 무슨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로 인해 Time to say goodbye는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고, 바다 건너 우리 나라에서도 스테디셀러로 자리 매김 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알려진 사라 브라이트만은 1960년 8월 14일 영국의 버크햄스테드에서 그렌빌 브라이트만과 폴라 홀 사이에서 6남매 가운데 장녀로 태어났다. 그러니까 우리나이로 치자면 41세, 불혹의 나이인 셈이다. 외국의 웬만한 아티스트들이 다 그렇듯이 사라 브라이트만도 3살 때부터 에름허스트 발레 학교에 입학하면서 조기 교육을 시작해 이후 예술전문학교, 왕립음악학교 등을 거쳐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다듬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가수가 될 것을 꿈꾸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무용에 치중했다고 한다.

그녀는 13살 때 런던 웨스트 엔드의 피카딜리 극장에서 공연되었던 에 출연했으며, 16살 때에는 특이하게도 댄스 그룹 판스 피플(Pans People)의 멤버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18살 때에는 알린 필립스의 무용단 핫 가십(Hot Gossip)에 들어갔고, 같은 해에 록 밴드의 매니저와 첫 번째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I lost my heart to a starship trooper이란 싱글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21세 때인 ‘81년에 런던에서 공연된 뮤지컬 의 오리지널 캐스팅 멤버로 참여하게 되면서 뮤지컬의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녀는 ’83년에 첫 남편과 이혼하고 ‘84년에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에 출연한 후 같은 해 그와 결혼한다. 이후 그녀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에 단골로 출연하게 되는데, ’85년에 출연했던 으로 그래미 최우수 클래식 신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뉴 새들러 오페라단의 에 출연했으며, 이듬해에는 런던에서 공연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에서 크리스틴 역을 맡아 커다란 인기를 모았고, ‘88년에는 장소를 브로드웨이로 옮겨 같은 역할로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89년에는 첫번째 솔로 앨범 THE SONGS THAT GOT AWAY를 발표했고, 이듬해인 ’90년에는 그녀를 지금에 있게 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이혼을 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우호적이었던 듯 ‘91년에 그의 작품 에서 로즈 역을 맡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미국과 일본에서 그가 만든 음악들을 공연하는 순회 공연을 갖기도 했다.
‘92년에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Amigos para siempre를 불렀으며, 고 ’93년에는 솔로 앨범 DIVA를 발표했다. 이후 그녀는미국으로 건너가 프랭크 피터슨과 손잡고 ‘97년에 솔로 앨범 TIMELESS를 발표했는데, 그 유명한 Time to say goodbye로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앨범에서는 플라시도 도밍고의 후원을 받고 있는 호세 큐라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뒤를 밀고 있는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했다. 이 앨범에는 영화 음악과 클래식 소품들이 그녀의 스타일로 실려있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99년에는 EDEN이라는 앨범을 발표하는데, 여기에는 셀린 디온의 My heart will go on의 이탈리아 버전인 Il mio cuore va와 영화 <파리넬리> 삽입곡이기도 한 헨델의 아리아 Lascia ch'io pianga,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주제곡 Un jour il vendra, <미션>의 주제곡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편곡한 Nella fantasia, 바로크 명곡으로 유명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편곡한 Anytime anywhere 등 빛나는 트랙들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가브리엘 오보에’는 작곡가인 엔리오 모리꼬네를 설득하기 위해 3년을 기다렸다는 일화를 가지고 있다.
Emma Shapplin
엠마 샤플린은 1974년 프랑스 파리 남부의 근교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적(魔笛)>을 듣고 오페라에 빠져든 그녀는 학창시절 교내 합창단에 발탁되어 솔리스트로 활동하기 했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악 공부를 하기로 작정한 그녀는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 모델과 전화 교환수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성악가의 길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러나 실로 우연한 계기로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인 장 파트릭 카드비유(Jean-Patrick Capdevielle)를 만나 의기투합하게 되고 이들은 엠마가 지닌 타고난 목소리에 포인트를 맞춘 앨범을 제작하게 된 것이다.
지난 1997년 데뷔 앨범 [Carmine Meo]를 통해 ‘별은 사라지고(Spente Le Stelle)’를 히트시키며 화려한 날갯짓을 시작한 크로스오버 소프라노 엠마 샤플린이 5년만에 선보이는 2집 앨범. 1974년 5월 19일 파리 태생으로 열한 살 때 TV 광고의 배경 음악으로 흘러나오던 모차르트의 오페라 아리아 ‘밤의 여왕(Queen Of The Night)’의 선율에 매혹되어 성악가의 길을 꿈꾸기 시작한 그녀는 클래식 음악인의 길을 꿈꾸면서도 자유로움을 추구해 학창 시절 헤비 메탈 밴드의 멤버로도 활동했고 거친 목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하루 두갑씩 담배를 피워댔다는 당찬 여인.
클래식 뮤지션의 길을 버리고 한 동안 록 음악에 빠져있던 시절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는 다시 클래식 음악을 향한 그녀의 열정을 불살랐고 공부를 위해 뉴욕으로 무작정 떠나기도 하지만 결국 정통 성악과는 다른, 좀 더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1980년대 활동했던 록 뮤지션으로 뛰어난 작곡가이기도 한 Jean-Patrick Capdevielle과 손을 잡고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시킨 크로스오버 음반 [Carmine Meo]를 내놓는다. 세련된 오케스트라와 팝 음악 악기인 베이스와 드럼의 둔중한 울림, 합창단의 스케일 큰 하모니, 그리고 이에 어우러지는 엠마 샤플린의 매력적인 소프라노가 어우러진 이 음반은 프랑스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세계 시장에서도 주목을 받았고 크로스오버 음반으로는 유례없이 무려 150만 장의 판매고를 보였다. 앨범에 실린 ‘Spente Le Stelle’는 테크노적 감각으로 리믹스되어 댄스 뮤직 신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이번에 선보이는 앨범 [Etterna(영원)]은 그녀가 참여했던 영화 [Red Planet](2000) 사운드트랙에서 함께 작업했던 작곡가 겸 프로듀서 그렘 레벨(Graeme Revell)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레이블을 [Pendragon]에서 [Ark 21]로 옮기긴 했지만 이번 앨범은 전체적 분위기 면에서는 데뷔작과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사용, 고혹적 멜로디와 감각적인 엠마 샤플린의 소프라노가 물소리 등 여러가지 효과음과 어우러지고 있는 점, 노랫말이 14세기 이탈리아어와 그리스어 등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부분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작곡자가 그렘 레벨로 바뀌었다는 것과 노랫말을 전곡 엠마 샤플린이 직접 써내며 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점, 그리고 샤플린이 편곡을 비롯해 많은 부분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 등이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알아듣기 힘든 고어로 만들어진 노랫말은 노랫말에 집착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멜로디의 진행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부여한다. 속삭이는 듯한 내레이션과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가미되어 있는 ‘Spesso, Sprofondo’ 같은 곡들에서 느껴지는 신비주의는 이번 앨범을 관통하는 커다란 흐름이라 할 수 있다. 다소 추상적이며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일렉트로닉한 팝적 감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엠마 샤플린의 음악은 크로스오버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George Dalaras
그리스 가수 요르고스 달라라스

Filippa Giordano(Soprano)
혜성처럼 나타난 얼굴인 필리파 지오다노는 이탈리아의 팔레르모에서 1974년 2월 14일 태어났다. 성당 합창단의 바리톤을 맡은 아버지와 메조 소프라노 겸 음악 선생인 어머니, 클래식 피아니스트인 언니, 첼로 선생인 오빠, 오페라 가수인 삼촌 등 클래식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다섯 살 때 음악 공부를 시작했고 아홉 살 때는 국립 무용 아카데미에서 고전 무용을 배우기도 했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고 현재도 클래식 음악을 위주로 하고 있지만 어린 시절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은 아니타 베이커, 휘트니 휴스턴, 조지 마이클, 마돈나 등의 팝 음아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정통 클래식을 하면서도 팝 음악에 관심을 갖고 크로스오버 앨범을 내게 된 계기가 아닌가 싶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가 안드레아 보첼리를 키워낸 인시메/슈가 레이블에 의해 발굴되었다는 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레이블의 사장인 카테리나 카셀리(Caterina Caselli)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카테리나 카셀리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데 과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TV 드라마 <종합병원>에 사용되었던 노래인 Buio in paradiso(천국의 어둠)의 주인공이다(이 곡은 우리말로도 번안되었다).
무작정 음반사의 문을 두드리던 그녀는 작곡가인 피에로 비바렐리를 만나 그에게 자신의 노래가 담긴 테이프를 건네주었고 그로부터 지오다노에 대해 알게 된 카테리나 카셀리는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즉각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것이 1998년의 일. 그리하여 그녀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이 <워너 뮤직>을 통해 발매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의 가능성은 이미 이탈리아의 영화 음악 거장인 엔니오 모리코네와 팝 음악계에서 유명한 작곡가 겸 프로듀서 연주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빗 포스터 등에 의해 이미 검증받았다. 특히 엔니오 모리코네는 이 앨범에 클래식 버전으로 편곡된 자신의 노래 Lost boys calling을 제공하고 있는데 그녀의 목소리에 완전히 매료되어 그녀를 ‘노래를 위해 태어난 아티스트’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데뷔 앨범 [Giordano]가 발매되기 전인 1998년 지오다노는 산레모 페스티벌에 참가해 신인 부문 2위를 차지했고 데뷔 음반의 성공으로 2000년대 들어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두 편의 영화에 출연해 노래를 불렀고 이 중에서 ‘Aida Degli Alberi’의 영어 버전은 심플리 레드의 믹 허크널과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지오다노의 크로스오버 데뷔 앨범 [Girodano](1999)에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Lost Boys Calling’과 ‘You Are The One’ 등이 실려있기도 했다. 지오다노의 데뷔 앨범엔 이 밖에도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Habanera)’, 푸치니의 [지아니 스키치(Gianni Scicchi)] 중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 등 널리 알려진 널리 알려진 오페라 아리아 등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지오다노는 정통 클래식과 팝적 감수성의 경계를 절묘하게 오가며 뛰어난 보컬을 들려준 바 있다.
조회 수 :
4551
등록일 :
2005.09.07
13:00:06 (*.102.123.217)
엮인글 :
http://onlymusic.biz/pop/12724/696/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onlymusic.biz/12724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 Albert Hammond, Jr.- You... 파호 2014-01-18 1915
5 Dan Fogelberg & Tim [7] 파호 2011-11-16 3419
4 Ambient paho 2005-10-09 3419
3 Folk Music paho 2005-10-09 3449
2 뮤지컬 Cats(캣츠) paho 2005-10-05 6047
» popera(팝페라) paho 2005-09-07 4551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

X